젊은 목사의 동네서점유랑기

 

황인성

 

양평에 동네서점을 고민하면서 동네서점에 대한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최근 들어 여러 서점들을 탐방하고 있다.

서점을 책을 배우는 모순?이라고나 할까?

특별히 아이들과 부모들이 볼 수 있는 책에 관심이 있어서

다양한 동네책방이 들어서고 있는 상수동 쪽 보다는 나름의 소신을 갖고 운영해 가는 그림책 위주의 동네서점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많은 곳을 돌아보고 또 도서관을 겸업하는 교회들도 탐방하고 있으나 그중 그림책 위주의 동네서점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몇가지 정보를 나누고자 한다.

자 일단 최근의 동네서점을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https://www.funnyplan.com)와그림책 지도(http://www.picturebook.or.kr/notice/?mod=document&uid=103)를 즐겨찾기에 넣어두시고 그럼 출발!

 

1) 산책하는 고래(https://blog.naver.com/whalestory3)

지금 서점이 있는 양평은 원래 주거용으로 부부가 사용하려고 준비한 집이고 두 부부의 출판사인 '고래이야기'는 서울에 있었다.

그러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출판사를 양평 집으로 옮기게 되면서 1층을 고래이야기에 출판하는 책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선별해서 판매하게 되었고

1층의 작은 방을 꾸며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북스테이' 공간으로 마련해 놓고 있었다.

도서출판 고래이야기에서는 사회적경제, 인권, 가치 등 아이들 인성교육에 필요한 좋은 동화책들을 번역하고 제작하는 그림책 출판인데

아이들에게 모든 책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내용과 그림 묘사가 훌륭하다.

잠시 주인 부부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자녀들은 혁신초등학교로 처음 붐을 일으켰던 근처에 있는 조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용문에서도 약간은 외진 이곳에서 동네서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겠으나 출판사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구조이기에 책 판매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주인 아저씨의 이야기도 마치 내 서재를 늘려간다는 느낌으로 누군가가 그 책을 사면 좋은 일이고 아니어도 본인의 책 권수가 늘어나는 것이라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셨다.

물론 상업공간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그럼에도 주인이 운영하는데 최대한 부담이 덜 가도록 고민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티와 커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는 책 사이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스릴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여러가지 우리의 상황을 함께 나눴더니 마치 본인의 일인 것처럼 함께 기뻐해주고 격려해 주시면서

양평 시내에서도 이런 건강한 책방들이 생겨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오셨다고 하시면서 새롭게 만나 이웃들을 환대해 주셨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얻은 여자 사장님의 솔직한 조언을 계속 곱씹게 된다.

 

"처음부터 순수한 의도만 가지고 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도서관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사람들 스스로도 책을 조금 덜 귀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작은 규모라도 상업공간으로의 인식을 먼저 심어주면 서로가 조금씩 더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이렇게 어느정도 세팅한 후에 협동 조합이라던지 마을공모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공동으로 운영이 되다 보면 오히려 다양한 이슈를 만나게 되서 추진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주인분의 뼈저린 인생 경험담을 듣는 듯 했다.

그리고 실제로 책 판매나 음료 판매로 나오는 수익보다 산책하는 고래의 경우 '북스테이'를 통해서 얻는 수익이 더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놀러간 그날도 강남에서 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으며 여유롭게 원하는 책을 보고 쉬러 오셨다고 하신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여보 나 당신이랑 부부 싸움하면 여기로 올거야 찾지마',

…. 이렇게 장소를 다 알려주면 이건 찾으라는거야? 말라는거야?

 

 

2) 원주 이담(https://blog.naver.com/wonju_edam)

원주는 교육혁신도시로 지정이 되어서 다양한 테마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많은 책 관계자들이 추천한 곳이어서 왔는데 처음에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이다보니 공설운동장 복합 건물이 있는 곳에 조금은 생뚱 맞게 1층의 한 공간을 도서관으로 개조한 모양이다.

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장소나 인적자원에 있어서 충분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을 원주에서 구성한 연구자문단들이 선정하여 자료집을 만들었도 책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담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들이 어느 곳에서든지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공간의 재미를 줌으로써 아이들이 단순히 책을 읽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안정감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놓고 그 주제에 맞게 책들을 구별해 놓았는데 책 구성에 있어서는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구성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책들도 함께 구비되어 있었다.

장점일 수 있겠으나 단점으로 본다면 그 주제에 대해 너무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전문성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인상도 받았다. 마치 인터넷 서점에서 그 '키워드'를 검색해서 괜찮은 책들을 대량 구매한 느낌이라고 할까?

대부분의 책들이 익숙한 소위 '노출된 책'들 위주였는데 구성한 사람들이 고민한 흔적이 더 뭍어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주말 아침이어서 그랬겠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공설운동장 공연장 뒷 편에 너무 숨어져 있어서 그런가?

 

3) 지브라(https://blog.naver.com/zebra_books)

양평에 있는 동네서점을 찾다 보니 위에서 소개한 산책하는 고래 외에 근처에 있는 블루마운팀 서점이 있는데

지금은 주인분이 아프셔서 운영을 안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곳을 검색하다가 문호리에 있는 '지브라'와 중고책방인 '더좋은 문호리 서점'을 알게 되었다.

'문호리'는 양평에서 꽤 많이 알려진 전원 주택지이고 최근에는 '문호리버마켓'이 많이 알려지고 있어서 여러가지 장소적 이점을 갖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주말이어서 지브라만 가보게 되었는데 위치는 문호리버마켓에서 맞은편 작은 길로 들어서 조금만 올라가면 예쁘게 생긴 집과 연결된 전면유리로 된 예쁜 서점이 나온다.

좁은 길로 들어서서 올라가는데 생각보다 꽤 깊게 들어와서 사람들이 잘 찾아올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살짝 되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서점에 들어서니 약간은 수줍어하는 책방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서점의 특징은 판매하는 책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구별해 놓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책방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고민은 '서점'을 너무 전면에 내세우면 '목표지향적인' 한국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이 없이는 잘 들리지 않게 되거나

서점에 오더라도 교보문고와 같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오랜 시간 동안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책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볼 수 있도록 열어두면 막상 판매해야 하는 책의 상품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다니!! 판매하는 책은 구입하고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책장도 못 넘기게 하는 야박한 곳은 아니다.

이곳의 젊은 사장님은 책방을 연지 이제 3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스테이도 함께 겸업으로 하고 있는데 서점 바로 뒷집이 본인과 부모님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라고 했다. 양평으로 내려온지는 이제 2년차....

그러니까 본인의 집 앞 마당에 서점을 차린 셈이 되겠다. 이곳에서도 사장님의 다양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운영하는 사람은 본인 한사람이지만 사업신고를 할 때는 책방, 간이휴게소, 숙박업 세가지를 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평 중에서도 교통이 약간 불편하다보니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도매로 가져갔다가 재고분량을 쉽게 돌려주는 시스템이 안되고 개인소비자처럼 책을 매입하고 반환이 안되는 시스템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최근 들어서 동네서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많이 생기는 만큼 폐업도 많은 초기정착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잘 준비해서 창업할 수 있는 설명회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은 것 같다.

지브라 사장님도 여러군데 창업설명회를 참석했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하나씩 준비해가는 과정에서 있어서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새내기 사장님께서 자신의 노하우와 구체적인 생생정보를 나눠주시니 감사할 수 밖에….

양평 시내쪽에 서점이 시작되면 양평 안에 있는 동네서점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의 정보들을 나누고 서로 홍보해주는 엽서나 소식지를 만들자고 겁없이 제안하고 길을 나섰다.

 

 

4) 레티티아(Laetitia) 책세계관 연구소(https://m.cafe.naver.com/throughpicturebook)

지난 2월 아주 반가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문학세계관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선생님들이 드디어! 공덕에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집 아이들도 6년전 즈음에 토요일마다 열렸던 어문세프로그램에 참여했었고,

그때 주제가 용서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나이에 맞게 이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엄선해서 같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무척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한 선생님에게 지금 일하고 계신 큰 출판사 기획실 일도 좋지만 조금 더 의미있고 본인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는 사업으로 창업하는 것이 어떠냐고?’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었고

시간이 조금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조금은 갑작스럽게? 창업소식을 듣게 되었다.

처음 찾아갔을 때는 아직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 때라 책 정리가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양한 주제별로 오랜시간동안 연구하고 모아 놓은 많은 그림책들과 결과물들을 볼 수 있었다.

미취학 아동부터 성인들에 이르기까지 각 연령별로 해당 주제에 맞는 그림책을 선정하고 같이 읽어가면서 주제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청소년들에게는 깊은 사고의 과정을 요구하며 어린 아이들에게는 독서의 즐거움과 글쓰기 훈련을,

어른들에게는 본인 뿐만 아니라 양육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함께 책을 읽어갈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필요시에는 교회나 기관에 직접 방문해서 몇주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위탁교육도 하신다고 한다.

요즘 독서지도사를 검색해 보면 수십개의 단체에서 다양한 자신들의 민간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다른건 몰라도 레티티아 인증독서지도사?’는 한번 도전해볼만 할 것 같다.

물론 레티티아에서 이런 과정을 시작해야 가능한 것이긴 하겠지만^^

조만간에 양평 식구들 몇 명과 관심자들을 모아서 어떻게 아이들 책 읽기를 지도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모임을 레티티아 선생님과 함께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양평 동네서점에 주제별 책 선정에 도움을 주실 레티티아 박현경선생님에게도 미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5)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http://grimbook.net/)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양평 이웃에게서 전화가 온다.

좋은 그림책 책방에 놀라가지 않겠냐고, 흔쾌히 오케이 했지만 책방이 있는 곳은 금산’, 집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림책 서점을 배운다는 마음에 기꺼이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차로 달려가 그리고 시내에서도 약간 더 들어간 곳에 마치 민속촌처럼 마을로 자리잡고 있는 서점을 발견했다.

윽 그런데 서점에 입장료가 왠말이냐…. 몇 천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이웃집 가족들과 우리집 가족이 총동원 되어서 입장했다.

특별히 아이들과 함께 온 이유는 한번 아이들의 반응과 피드백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어떻게 공간을 활용하고 느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아이는 조금 지루해 했고 초등학생인 아이들은 마치 제집인양 알아서 흩어져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는 사실!

영성수도원, 레스스쿨 대안학교, 그림책 도서관 등이 주요 건물이었고 실제로 방문객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지구별그림책 도서관이었다.

한쪽 공간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졌고 다른 한 공간은 서점의 개념으로 책을 직접 사서보는 곳인데, 여기서의 특징은 대부분이 판매되는 책은 비닐로 포장되어 있고 견본으로 다시 책을 한 권씩 올려 놓았다는 점이다.

판매되는 책은 품질을 유지하고 내용은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으나 그만큼 서점 입장에서는 재고가 늘어가는 부담감도 안게 된다. 중간중간에 책을 담은 이동 수레에 책을 진열하고 있었는데 다른 공간으로 활용할 때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공간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책을 선별해서 진열해 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분리된 공간으로 음료와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먹은 점심메뉴는 매우 훌륭했다.

풍기 알리오 올리오맛에 빠져 며칠 후 결국 집에서 시도해봤지만 실패, 역시 무엇이든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식당 한 켠에는 요즘 돈 많은 도서관에서 많이 하는 한쪽 벽면을 높이 책장으로 만들어 책들을 꽂아놓은 인테리어가 인상깊다.

굳이 인테리어라고 말한 것은 위쪽의 책을 빼 올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쪽에도 꽤 많은 최신 도서들이 꼽혀 있었는데 그저 눈으로 바라만 봐야 하다니

2-3만원 하는 벽돌이 치장되어 있는 셈이다. 역시나 이 도서관은 돈이 많은거야…,

잘 안보는 책들을 기증받아서 인테리어측면에서 꾸미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 일 수 있으나 실제로 이것을 도서관으로 활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싶다.

코엑스에서도, 파주 헤이리에서도 느꼈던 피드백이다. 지하에는 어린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공간이 있고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느낌은 다소 방치되어 있는 듯 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첫번째 방에서 책을 볼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막상 공간에 비해 볼 수 있는 책의 종류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도서관 밖으로 나오면 미국에서 수입해온 듯한 스쿨버스 도서관이 있었고 (역시 몇 권의 책만 나열되어 있었다는 아쉬움이.…)

천주교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래비린스(Chartress Labyrinth)가 있었다.

마치 중심에 금방 다다를 것 같지만 다시 중심에서 멀어지고 그렇지만 조용히 계속 그 길을 걷다 보면 결국 중심에 다다르는 수도사들의 미로 묵상길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로 더 어울리는듯 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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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shu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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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묵묵히 함께 동역해주시고 기도주시고 또 후원해주시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힘을 얻습니다. 오랜만에 가족 소식을 전합니다. 물론 페이스북이나 개인적인 만남들을 통해서 가족의 근황을 전하기는 했지만 지난 시간 동안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들과 또 앞으로 이루고 실천하고자 하는 몇가지의 기도제목들이 있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16 6, 벌써 재작년 일이네요. 영국으로 떠나고자 하는 일이 갑작스럽게 막히면서 우리 가정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몇 달 동안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작년 2월, 한국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재정적 여유가 없었던 부분도 있었지만 그러나 동시에 영국에서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작은 소망을 자연과 벗할 수 있는 새로운 곳에서 이루어 가고 싶은 저의 순수한 바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선교지에 가도 최소한 2년 정도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과연 이곳이 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인지 시험해 보는 시간을 갖기 마련인데, 저희 가정에도 일종의 실험 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장해가는 아이들

아이들의 성장 나이테는 그 간격이 더욱 넓어져 가는 듯 합니다. 윤서가 이제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엄마 키를 훌쩍 넘는, 방에서 제법 홀아비 냄새 좀 풍기는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수아도 올해 5학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소연 자매라고 착각할 만큼 부쩍 성장했습니다. 그래도 어릴적 수아 특유의 에너지와 춤바람?은 여전히 살아있는 아니 더 개발되고 진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집에서 불리는 수아의 또다른 이름은 '...'입니다.


 

동역자를 만나다

생각만 하다가 후회 하느니 한번 부딪혀보고 아니면 다시 돌아가자는 삶의 신념을 갖고 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양평에서 이미 시작한 공동체에 잠시 함께 해보기도 하고 또 주변의 고민과 실제적 노력들을 보면서 생각들을 정리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작년 6월 초였습니다. 평소에는 서로 바빠서 잘 연락하고 지내지도 못했던 잘 아는 형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 이번 여름 휴가 때 첫째 아들과 잠시 시간을 내어 유럽에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도움을 좀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약속 날짜를 잡고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고 몇가지 도움을 주고자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아들과 여행하기'가 아닌 '함께 양평에 살아가기'로 전환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백흥영 목사님 가정과 양평에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대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히 저의 설득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백 목사님 가정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또 다른 준비를 시켜 오셨고 이제 때가 되어서 두 가정이 함께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It's all about relationship

영국에서 함께 사역했던 문성홍 선교사님이 자주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저의 삶의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관계'입니다. 비전, 사역, , 소망함, 기도 등등... 삶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바로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는 더욱 이 '관계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순수한 관계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서로의 필요에 맞추어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백흥영 목사님의 사모인 이선영 사모님은 저의 모교회인 수원성 교회 중고등부 시절부터 함께 몰려 다녔던 공동체 식구들이었습니다. 백 목사님은 대학생이 되고서 청년부에서 만나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분입니다. 소연 자매와도 청년시절부터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던 분들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윤서, 수아와 동갑내기인 하민이, 지민이 그리고 올해 2학년이 된 다민이까지 3형제를 홈스쿨링하고 있는 가정입니다. 얼추 계산해보니 25년여의 시간을 알고 지내 왔군요.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보다는 어릴적 새로운 사고를 치려고 언제나 흥미진진해 있었던 그 설레임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막이 오르다

작년 6월 첫만남을 시작으로 '함께 사역한다는 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주 서울에서 한 두번씩 양평으로 가족이 넘어와서 함께 교제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야기하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언제나 그랬듯이 집에서 잠을 자고, 아직 교회 사역을 하고 있었던 흥영 형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새벽기도를 섬기기 위해 출발하는 일이 잦아지곤 했습니다. 8월에는 함께 포항, 경주로 나름의 합숙을 떠났습니다. 짧은 시간을 집중력 있게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냥 말 그대로 열심히 놀다가 왔습니다. 양평으로 이사를 와서 더욱 진지하게 다음 스텝을 고민하기로 결정하고 함께 집을 알아보느라 제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 나온 왠만한 집들은 다 찾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이 되서야 우리 집에서 1분이면 다다를 수 있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함께 사역을 시작하자고 자주 모인 것 뿐인데 어쩌면 처음 만남 이후부터 이미 공동체는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명교회(共鳴)

매주 만나면서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리는 과연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였습니다. 왜 전에 속해 있던 공동체를 떠나서야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서로의 생각이 달랐고 이해하는 정도가 달랐지만 그래도 감사했던 것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서로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을 미리 다 재단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보고 싶은 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풀어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모이는 공동체의 이름을 '공명교회'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완벽하고 조화로운 관계의 이야기가 우리 신앙 공동체에 공명을 일으키어 울림을 주고 이러한 신앙 공동체의 또 다른 조화로운 삶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습니다.

 

사명선언문

 

공명교회의 사명은

성삼위 하나님의 삶이 우리에게 와서 맞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맞울려져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Here Biography Touches Biography!!!

 

-(함께함)

공명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조화로운 관계를 본받아

한사람의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그 조화로운 관계를 가정, 공동체, 지역사회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일방적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함께 성숙해가는 생명 생태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울림

공명교회는 하나님과 사람들과 지역사회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함께함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전달되는 울림이 있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성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그리고 성령의 친밀한 교제로 가득찬 복음을 전달하며,

인간으로서 우리가 이 복음을 온 피조세계에 전달하고자 훈련된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 다듬어져 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공동체는 재정이 투명한 공동체, 교회에서만이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건강한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공동체,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노력 등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교회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일종의 얼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계속해서 세워지는 공동체 식구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수정해가고 보완될 것입니다.



 

작은 시도들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고자 하는 마음과 그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의 모습일까? 어디에서 이루어갈 것인가? 새로운 장소가 필요할까? 등등의 현실적인 질문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미 선영 사모와 소연 사모가 용기 있게 'with moong'이라는 공방을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나 신앙 공동체에서 훈련해 가는데 도움이 될만한 실제적인 도구들을 만들어 가자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했던 12지파를 주제로 한 메모 달력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꽤 많이 팔리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함께 모여 성탄예배를 드렸고 이후에 주변의 이웃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선물을 함께 나눴습니다. 수아의 특기인 쿠키 만들기가 빛을 발했습니다. 저는 목사라는 타이틀 외에 '선생'이라는 역할이 어울리는 듯 합니다. 윤서랑 친한 친구들 몇 명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영어 소책자를 함께 읽고 공부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철학 책을 꼼꼼하게 읽듯이 한 페이지를 읽더라도 천천히 내용을 보면서 또 필요한 문장들은 서로 말하면서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영어 인문학 세미나라고 할까요? 소연 자매도 주변의 아이들 친구들을 위해 학습적인 부분을 챙겨주는 섬김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마을을 섬길 수 있을까?

우리의 기본적인 고민은 우리가 정착한 양평 지역의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양평군청 홈페이지에는 면단위 별로 인구추이를 나타내는 통계자료가 올라오는데 흥미롭게도 저희가 터전을 잡은 강상면은 유입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곳이었고 그 중에서도 젊은 세대의 인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곳입니다. 최근에 생긴 아파트 어린이 집 정원이 130명이었는데 이미 포화된 상황입니다.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을 선택하는 젊은 부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문화, 교육 인프라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또 아기를 양육하는 젊은 엄마들의 쉼터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젊은 세대였고 이들을 섬길 수 있는 공동체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보통 새로운 교회의 형태로 선택하는 최근의 경향은 카페 혹은 도서관 형태였습니다. 실제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또 카페를 운영하는 교회들을 탐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장기적으로 자립 운영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동네서점 개념의 문화공간이 생겨나고 있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먼전 양평에 있는 동네서점들을 방문하고 인터뷰하고 원주, 금산, 서울 등등 많은 곳을 돌아보면서 단순히 선한 의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장소 찾아 삼만리

양평으로 이사 온 후 제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은 주변 지역을 드라이브 하거나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눈 여겨 두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기차역에서 그리 멀지 않고 남한강이 바로 보이는 강변도로에 인접한 오래된 주택들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얼마전까지 수제 맥주를 팔던 빨간 벽돌의 주택이 임대로 나오게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백 목사님 가정과 함께 건물을 보고 아담한 장소에 서로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주말에 공동체 모임을 하기에는 약간 협소한 공간과 시내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서울 중심가 못지 않은 높은 임대료 때문에 오랫동안 고심을 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적극적으로 우리가 임대할 공간을 한번 알아보자고 마음을 고쳐먹고 양평 시내를 중심으로 (아이들과 젊은 엄마들이 쉽게 올 수 있도록) 주변의 상가와 전원주택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남한강을 곁에 둔 남쪽 강변에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보고 가게, 잘놀다 가게

지난번 보았던 맥주집 보다도 공간을 활용하기에 좋았고 집 주인이 얼마전까지 직접 인형 만드는 공방으로 사용했던 곳이라 이미 어느정도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40여평의 공간이었습니다. 앞에 텃밭도 있고 또 주인 아주머니께서 오히려 앞 동산을 꾸며줄 수 있으면 더 고맙겠다고 부탁하시는 넓다란 공간이 있는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수아랑 다민이도 강상 초등학교에서 걸어올 수 있는... 많은 장소들을 돌아보았지만 이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 모두 '여기다!!'라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월 임대료도 처음 봤던 맥주집의 반도 안되는 가격이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소심한 셈법으로 계산해 봤을 때 이 정도면 도전할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이름을 임시적으로 '책보고 가게, 잘놀다 가게'로 일단 붙여 두었습니다. 아참! 그 집을 본 다음날 바로 가계약 했다는 말을 깜빡했군요. 주일에는 공동체 예배 공간으로 그리고 주중에는 아이들이 책을 보고 쉬는 공간과 아이들을 위해 선별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서점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동네서점 탐방기는 조만간에 한번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안쪽 방은 두 사모님들이 공방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는 작업실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문화 복합 공간이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해 주실 일들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37()에 가계약을 했고 4 20일까지 보증금 잔금을 치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6 6일부터 공식적인 시작될 공명교회에 필요한 인테리어와 물품들을 준비해 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9월 중으로 시작될 서점에 필요한 절차들을 준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박한 꿈에 함께 해주시기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기도로, 재정으로, 시간으로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모양으로 함께 동역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This is crazy but I know it makes me alive

 

오랫동안 움츠려 있던 야성의 날개를 다시금 시험 삼아 펼쳐보는 느낌입니다. 열정의 청년들과 함께 유럽을 누비며 또 아프리카를 함께 다니던 그런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단순히 나의 삶, 나의 공동체만이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대로 회복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 이 공간의 사명일 것입니다. 주인 분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십니다. 가게가 오픈 되면 자기가 존경하는 스님도 모셔오겠다고 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이웃들의 소리에 경청하고 그들에게 창조주의 사랑을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가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일 것입니다. 

 

공동체를 세워감과 동시에 저는 아직 남은 학업과 주중 며칠은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사역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도 가정 사역과 관련된 책 출판과 강의를 병행하면서 이 사역을 조금씩 세워가고 있습니다. 두 가정 구성원들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부탁 드립니다.

 

하나님의 삶의 이야기가 우리들을 통해 잘 울려질 수 있도록 소원합니다.

 

우리는 함께 가고 있습니다!

 

백흥영, 이선영, 백하민, 백지민, 백다민

황인성, 배소연, 황윤서, 황수아

그리고 함께하는 동역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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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shuais
,

시온주의운동의 평화공존 가능성 모색


황인성


Ⅰ. 서론

   20세기를 전후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은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결국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은 극에 달하였고 때마침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시온주의운동’이 태동되었고 여러 열강들 사이에서 마침내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순수한 종교운동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체적 세속적 정부구상에 대한 욕구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그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 보이는 듯 하다.[각주:1]

   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는 시온주의 운동은 어떻게 발생하였고 또 그 특징은 어떠한지, 특별히 유대교 정통주의와의 비교를 통한 종교적 의미와 시온주의 운동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살펴보고 미래적 제언으로 앞으로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에 있어서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시도들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또한 어떠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Ⅱ. 시온주의 운동의 역사


   예수의 지상 사역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폭동이 일어나고 이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2000여 년 간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유배생활이 지속되어 왔다. 기독교가 박해의 시기를 거쳐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로 인정되면서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차별은 점점 심화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유럽과 이슬람 국가들에 상처를 남겨 준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심지어 종교개혁의 시기에도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유대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각주:2]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속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오히려 이러한 유대교의 사회적 지위와 도덕성을 이용한 선교적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각주:3] 그러나 유대인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속한 국가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전을 꿈꾸던 유대계 철학자들이나 정치가들도 자신들의 꿈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로 다가오면서 더욱 심해지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민족주의로 집결하는 가운데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한 불안감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동화가 아닌 이제는 자신들의 땅으로 모이는 것에 관심이 커져가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여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유대교에서 강조되는 ‘선택받은 민족’과 ‘약속의 땅’, ‘예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 개념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더욱 ‘시온’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살해된 배후에 ‘유대인’이 있었다는 소문에 의해 시작된 유대인 박해는 혁명의 시기였던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유대인이었던 프랑스 장군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894년 조국 프랑스를 배신하고 독일을 도왔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으나 오랜 시간 후에 명예가 회복되기도 하였다.[각주:4] 그리고 20세기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독일의 홀러코스트 등은 유럽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가 이제는 참아만 하는 시련이 아닌 당당하게 맞서거나 완벽하게 회피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한스큉은 이러한 시온주의 태동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홀로코스트’가 시온주의 운동의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홀로코스트 자체가 시온주의 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주:5]그리고 그는 시온주의 운동은 20세기 전후로 강성해지고 있는 제국주의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운동이지 순순한 ‘시온’을 소망하는 종교적 운동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각주:6]예후다 알카라(Yehudah Alkalai), 츠비 히르시 칼리셔(Zevi Hirsch Kalischer),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Elezer Ben Yehuda), 모세스 헤스(Moses Hess)와 같은 랍비와 사회 혁명가들에 의해 시온주의 운동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1882년 공식적으로 첫 이스라엘 ‘이주’(알리야, Aliyah)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레온 핀스커(Leon Pinsker)에 의해 정치적 시온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각주:7]


‘올바르고 유일한 치유책은 자신의 땅과 토대 위에서 유대인 국가와 유대인 민족을 만드는 것이고 유대인이 스스로 해방되는 것이며, 자신의 고향을 얻음으로써 다른 나라와 동등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각주:8]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종교적인 측면이 아닌 민족적 측면에서 유대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땅을 가져야 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글과 정치력에 있어서 뛰어난 그는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대인들의 국가 설립을 위한 제1회 세계시오니스트 총회를 개최하게 된다. 


1) 유대의 농업 노동자나 공업 노동자의 손을 빌어서, 적당한 방법으로 팔레스티나를 개척한다. 2) 각국의 법에 맞는 국내, 국제 단체의 지원을 얻어, 세계의 유대주의를 통합하고 조직화 한다. 3) 유대의 민족의식과 민족감정을 강화하고 유지한다. 4) 시오니즘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정부로서의 권한을 얻기 위해 예비적인 조치를 취한다.[각주:9]


   이와 같이 첫 번째 시오니스트 총회를 통하여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은 되었으나 정확히 어디에 정착할지에 대해서는 이때까지만 해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을 통하여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귀환을 구체화 시키게 된다. 하임 바이츠만(Chaim Wezmann)은 영국 수상 제임스 아서 벨푸어(James Arthur Balfour)와의 협상을 통하여 ‘민족의 땅’으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받게 될 것에 대한 협상을 이루었고 그렇게 ‘벨푸어 선언’이 공포 되었다. 


외무부

1917년 11월 2일

Rothschild에게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염원에 대한 탄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승인으로서 다음의 공감의 선언을 보냅니다.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적 거처(national home)을 설립하는 것에 호의적인 입장이며 이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있는 비유대인 공동체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에 편견을 주는 어떠한 시도도 하면 안 되며,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들과 정치적 위치에도 편견을 주는 어떠한 시도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 선언을 시온주의자 연대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길 바랍니다. 

아더 제임스 벨푸어[각주:10]


   이후 영국은 소용돌이치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문제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유엔에 넘기게 되었고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에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대인 인구수보다 인구가 두배나 더 많았던 아랍인은 오히려 더 작은 땅을 분할 받았다. 아랍진영은 결국 이  분할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1948년 4월 15일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 Gurion)을 수상으로 하는 국가를 설립하게 된다. 한스큉은 이 당시 아랍이 유엔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국가로 서는 기회를 잃어버린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각주:11]



그림1) UN 분할국가 중재안[각주:12]


   플래판은 물론 이스라엘이 이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향후 이스라엘 국가 영토 확장을 위한 발판이었지 궁극적인 합의점을 아니었을 것이라는데에 방점을 두고 있다.[각주:13]

   그러나 실제로 현재의 이스라엘의 국경은 1947년 UN의 중재안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선포된 이후 비유대인들을 불법체류자로 규정하고 수많은 핍박과 전쟁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단순히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 유대인들만의 갈등이 아닌 주변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대결구도로 번졌고 국가 간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나이 전쟁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56년 10월에 발발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점령을 끝이 났고 이후 소련과 미국의 중재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6일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선제 공격함으로써 시나이반도,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였다. 1982년에는 레바논을 침공하기도 하였다.[각주:14]


Ⅲ. 시온주의는 유대교를 대변하고 있는가?


   이처럼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의 힘의 논리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한 시온주의 운동은 과연 유대교와 얼마만큼의 관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가령 유대교의 신앙의 가르침이 그대로 표출 된 것이 시온주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반대로 이 운동은 종교역인 측면은 배제된 채 순전한 ‘유대인’중심의 또 다른 민족적이며 세속적인 정치운동으로만 볼 것인가?의 긴장관계 속에 놓여있다. 유대교가 강조하고 있는 교리적 측면에서 어떠한 부분이 시온주의와 맞닿아 있고 또 어떠한 부분이 종교를 넘어선 세속적 특징인지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기본적으로 아브라함을 육적인 혹은 영적인 아버지와 그 계승적 관계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관점은 각각의 종교에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유대교의 아브라함 전통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과 이슬람 또한 아브라함에 대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다른 두 종교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한스큉은 지적하고 있다.

   유대교 공동체는 형성되는 공동체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갑자기 시작된 민족도 아니며 그 민족의 시작을 정확히 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한 가지 논점은 유대교가 마치 유대인을 인류의 시초 부족으로 보고 인류역사가 유대인,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오류임을 한스큉은 지적하고 있다.[각주:15] 성서 초기에 나오는 아담 사상은 성서의 보편주의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장소가 있음을 한스큉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각주:16]

   성서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출애굽, 시내산 언약 그리고 가나안 정착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중 모세는 모든 종교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특별히 기독교에서는 모세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열등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어떤 인물 보다도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요컨대 유대교는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이루어진 계약 공동체이며 그와의 언약을 통해서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고 정착하게 되는 것이 유대교가 바라고는 성서의 중심주제일 것이다.[각주:17]

   한스큉은 성서를 근거로 한 구약의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서술한 이후 예수 시대 이후 유대교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그중 눈여겨 볼 점은 왜 유대교는 중세시대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변화와 같은 일종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점이다. 한스큉은 이에 대하여 포로기 이후 유대교는 성서보다도 바리새인과 랍비에 의해 주도되는 미쉬나와 탈무드 전통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전 세계로 퍼진 다이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전통과 율법을 해석해줄 수 있는 랍비의 권위가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랍비-회당 패러다임을 통하여 헬라화되고 계몽화되었던 기독교와는 달리 유대교는 비교적 자신들의 전통을 온건하게 지켜올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시대별로 다시 성서로 돌아가고자 하는 카라이파나 성서의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카발라파와 같은 분파들이 생겨나기는 하였으나 십자군 전쟁이나 다른 시대적 상황 속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각주:18]

   이러한 랍비-회당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종교배타주의로 인하여 유대교는 황제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 수많은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각주:19]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유대교에 대한 정의는 더욱 어려워졌다. 국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의 인구보다 10배가 더 많다. 또한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유대인들도 상당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대전과 내전 등을 거치면서 종교 자체를 갖고 있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교를 고수하는 정통주의자들부터 종교자체에 무관심한 세속적 유대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있다. 시온주의 운동 초기의 사상가나 정치가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개념으로서의 독립을 원한 측면이 더 크다. 예를 들어 헤르츨은 시온주의 운동의 태동에 크게 기여한 인물인데 그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교적 정통주의가 강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각주:20] 그는 시온주의 운동의 결과로 세워지는 국가 이스라엘이 신정체제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이미 유대교 전통주의자들이 먼저 정착한 상황에서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벤 구리온은 종교적 정통주의자들의 의견을 사회, 정치적 영역에 반양하기에 이르렀다. 결혼, 이혼 그리고 많은 삶의 영역에서 정통적인 유대교 양식이 초기 국가 이스라엘에서 나타나게 된 원인이었다.[각주:21]

   홀로코스트는 근대의 유대인들이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리처드 루벤스타인(Richard Rubenstein)은 유대인수용소에서 신의 죽음이 최종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신의 존재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사변적 논리가 아닌 경험적 허무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이었다.[각주:22] 샬롬 벤코린(Shalom Ben-Chorin)은 아우슈비츠는 결국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대신 고난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각주:23]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국가들도 기독교 국가에서 세속사회로의 전이과정이 더욱 빨라졌던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종교적 유대인보다는 초월적 신에 대한 회의감과 종교성을 넘어선 유대민족운동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전통적 유대교 신앙과의 거리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에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인 흡인력 보다는 정치적,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국가의 보호 아래에서 유대민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줄 프리드만 또한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아래 유대인이 의미를 갖게 됨을 강조하였다.[각주:24]

   요컨대 시온주의 운동은 신앙을 강조하는 전통적 유대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수세기에 걸친 핍박과 종족말살 정책의 현실 속에서 기존의 신앙에 대한 회의감과 그러나 동시에 ‘시온’을 염원하는 민족적 정서가 결부되어 시온주의운동이라는 염원을 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다른 말로 해석하면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되었고 지금도 그 힘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Ⅳ. 시온주의의 평화모색 가능성 탐구


 1. 마틴 부버의 사상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


   팔레스타인 지역 평화를 위한 접근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과거 정통주의 유대교에 근거한 유대인들의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둘째로 근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시온주의 운동과 같이 종교적인 측면 보다는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인종차별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셋째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접근으로 모두의 생존을 위한 실용주의와 현실주의적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다.[각주:25]

   어떤 의미에서 유대교의 교리적 가르침보다 훨씬 더 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 또 다른 종교와의 타협과 평화를 위한 여지의 공간이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먼저는 마틴 부버의 사상을 통하여 기본적으로 양진영이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에 대해 고민해보고 종교 간의 대화 차원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특별히 유대교와 이슬람의 대화에서 공통의 기반을 두고 풀어나갈 이야기의 가능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논의들과 활동들을 위에 살펴 본 배경에 비추어 평가해봄으로써 앞으로 시온주의 운동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미래적 활동에 대한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마르틴 부버는 유럽 계몽주의의 근간을 세운 ‘관념철학’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시작은 ‘인식의 주체’가 아닌 ‘존재’의 관계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I-It이 아닌 I-Thou의 관계설정인 것이다. cogito(나는 생각한다)보다 relatio(관계)가 더 우선시 된다고 말한 것이다.[각주:26] 그는 1939년 취리히에서 열린 16차 시오니스트 총회에서 지금 유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족 활성화나 히브리어 개선이 아닌 나-너의 관계 안에서 오는 ‘히브리적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 그의 발언은 시온주의자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관계중심, 타인을 생각하는 사상은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부버의 사상은 결국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 근본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근대화와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 하나님을 지워가려는 대부분의 계몽주의 운동에 반대하며 부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대체 불가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관계적 나-너의 구조 속에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말하였다.[각주:27]

   부버도 주장하였던 것처럼 실제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진영의 정치적인 타협점이 필요하다. 한스큉은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는데 첫째로 이스라엘 주변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경계선을 보장하는 것이며 둘째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일부 영토 반환과 요르단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셋째로 팔레스타인 민족이 주권국가로서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28] 이와 동시에 예루살렘은 두 진영이 함께 공존하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29]

   한나 아렌트, 마그네스 등도 이민족주의 국가 설립을 지지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 내 비유대인들 또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동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아렌트는 민족주의 중심의 국가 건설이 결국 수많은 난민을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시온주의 운동을 반대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맞는 연방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각주:30]


 2.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평화 추구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한스큉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공통 영역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가까워질 수 없는 몇 가지의 영역을 언급하였다. 기독교의 교리의 출발을 삼위일체에 근간으로 한 신학으로 삼는 것은 유대교와의 대화에서 쉽게 단절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일신 사상의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서 죽는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며 영원한 인류의 구원자이자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모두가 합의 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주제에 대하여 몰트만과 같은 학자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나 한스큉은 이 또한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주체가 되어서 죽는 모순적 상황이나 입증되지 않는 많은 고난 이론을 제시하는 것보다 실존적 상황 안에서 시간을 갖고 침묵하는 신학이 오히려 서로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각주:31]

   유대교와 기독교는 특별히 토라라는 공통된 기반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종교 간의 이견이 있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특징에 먼저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한 유대인의 모습을 입고 온 사람이었다. 나사렛의 한 목수의 아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에게 메시야 자의식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상관없이 유대인들에게는 불경건한 것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후의 메시야 선포는 별개로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은 철저히 유대적이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대교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와 유대교인은 시편이나 다른 문헌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전통이 있으며 무슬림의 경전이 꾸란의 몇몇 기도문 신학적으로 문제 없이 세 진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한스큉의 주장이다.[각주:32] 이러한 기도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확인 된다면 바위 돔 사원을 사용하는데에 있어서도 무슬림과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기도를 위한 장소를 쓸 수 있는 평화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 중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를 통한 호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 외에 온건한 이슬람 진영은 평화적인 접근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반유대주의'에 도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이슬람 대학에서는 'Islamicjerusalem'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이슬람 성구와 전통에 근거하면 예루살렘은 평화와 갈등 해소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과 꾸란의 올바른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공통된 주장을 확인하면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33]


 3.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이스라엘의 귀환 운동을 주장하는 소위 '알리야 운동'에서는 20세기 초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말씀으로 그 근간을 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종말의 시대에 구약 예언의 성취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혈통적인 후손들, 곧 다윗 왕으로 시작된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는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의 세대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까지 이슈가 되었던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회복될 것인데 예루살렘도 지금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재림이 이뤄지므로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필찬은 이스라엘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뒤로는 에덴의 아담을 배경으로 하고 신약에서는 교회에서 그 종말적 성취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위의 주장들은 성경적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고 있다.[각주:34]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선교』에서 야웨는 이스라엘만을 위해 존재하는 편협한 지역신이 아닌 다른 어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 우주적인 하나님이라는 매우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야웨에 대한 이해는 선교의 성경적 기초가 아닌 성경의 선교적 기초라는 해석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매우 자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에서 큰 단절을 느꼈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을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신약의 하나님을 온 열방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 부분에 대하여 구약의 하나님이 단순히 이스라엘에만 묶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관점으로 풀어감으로써 신약의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모습과 충돌되지 않는 것이다.[각주:35]

   자칫 선민주의에 빠질 수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으로 다가가시며 때로는 언약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시기도 하며 또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또한 바벨론의 포로시기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고레스의 하나님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이트의 아모스 9장 7절의 말씀 해석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아모스의 중심주제인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9장 7절의 말씀과의 불일치 속에서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으나 라이트의 ‘이스라엘만을 편애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해석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일한 관점으로 그의 다른 책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각주:36]

   이것은 비단 국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 어떤 다른 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모든 민족 위에 신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야웨의 보편성과 유일성에 도전을 받는다면 그 도전의 주체가 설령 언약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민족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심판하시고 원래의 약속으로 돌이키신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모습이 혹 바벨론 포로기 이전 하나님과 원수 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있지는 않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스큉은 기독교인으로서 이스라엘 국가와의 관계는 비판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첫째로 이스라엘을 국가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인정하되 팔레스타인 내에서 그들의 땅의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신학을 발전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성이나 홀로코스트 사건 이후의 동정심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주며 위에서 언급한 종교 간의 대화를 열린 자세를 갖고 임할 수 있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37]

   이러한 팔레스타인 지역 내 기독교의 역할에 대하여 최근에 ‘카이로스 팔레스타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각주:38] 팔레스타인 내 거주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서 해야 할 사명과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문서를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존하게 하셨으므로 이들의 권리를 빼앗고 박탈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정의한 것이므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WCC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2014년, WCC Central Committee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판에 대한 경제지표와 기독교의 책임’(Statement on Economic Measures and Christian Responsibility toward Israel and Palestine)[각주:39]을 발표하였다. 특별히 미국 장로교회와 연합감리교회의 예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불법적 지역 점령을 지지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약자들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형태의 운동도 전개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윤희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 있다.[각주:40] 첫째로는 평화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둘째로 불매운동(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제재(Sanction)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로 기존의 성진순례는 이스라엘 국가의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므로 대안적 성지순례를 진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기도 하다. 


Ⅴ. 결론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교 정통주의와는 사뭇 다르게 유대인의 민족성을 사회적이며 세속적으로 강조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온주의 운동의 결과로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되는데 있어서 다양한 정치적 긴장과 특별히 다른 나라들의 개입으로 인한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힘에 의한 이주정책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기존에 살고 있는 수많은 비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생겨났고 이 갈등 양상은 더욱 커저 가다가 결국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번져가기도 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온주의 운동에 있어서 타민족과의 평화 공존을 위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가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유대인으로서 관념철학을 넘어 상대방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나와 너’의 관계성을 강조한 마틴 부버의 사상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쳤고 두 민족이 함께 공존하는 현실적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무신론적 유대인들과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특별히 이 세 종교는 동일한 뿌리에서 시작되었고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첨예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며, 구원자이며, 심판자이신 한분 하나님의 신앙 아래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대화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국가 이스라엘을 성서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지 않고 연약한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부정의한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며 평화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비판적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처럼 정통주의와 전근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서 상대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시온주의 운동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참고도서


1. 번역도서

Bulter, Judith. 양효실 역.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서울: 시대의 창, 2016.

Chapman, Colin. "Evangelicals Islam and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김아영 편. 『이슬람연구2』.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3.

Küng, Hans. Das Judentum: Die religiöse Situation der Zeit. 이신건 외 2인 역. 『한스큉의 유대교』. 서울: 시와진실, 2015.

Mitho, Miyata. 박은영•양현혜 역.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서울: 한울, 2013.

Sartre, Jean-Paul.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 서울: 시공사, 1991.

Wright, Christopher. The God I Don't Understand. 전성민 역.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__________________. The Mission of God. 정옥배 역. 『하나님의 선교』. 서울: IVP, 2013.


2. 서양도서

Ateek, Naim Stifan.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 N.Y.: Orbis Books, 2008.

Flapan, Simma. The Birth of Israel: Myths and Realities. N.Y.: Pantheon Books, 1987.

Harnack, Adolf.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PA: Harper Torch Books, 1962.

Pinsker, I. "Autoemanzipatio!." Ein Mahnruf an seine Stammesgenossen von einem russischen Juden. Brlin 1882.


3. 국내도서

이윤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기독교사상(2014.09), 

25-41.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4. 기타자료

http://www.kairospalestine.ps/index.php/about-us/kairos-palestine-document [2017.12.23. 접속]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geneva-2014/statement-on-economic-measures-and-christian-responsibility-toward-israel-and-palestine [2017.12.23. 접속]


  1. 최근 미 대통령 도날들 트럼트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발언은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본문으로]
  2. Hans Küng, Das Judentum: Die religiöse Situation der Zeit, 이신건 외 2인 역, 『한스큉의 유대교』(서울: 시와진실, 2015), 272-277. [본문으로]
  3. Adolf Harnack,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PA: Harper Torch Books, 1962), 1-35. [본문으로]
  4. Hans Küng, 338. [본문으로]
  5. Hans Küng, 412. [본문으로]
  6. Hans Küng, 413-414. [본문으로]
  7. Hans Küng, 414-415. [본문으로]
  8. I. Pinsker, "Autoemanzipatio!". Ein Mahnruf an seine Stammesgenossen von einem russischen Juden, Brlin 1882, 35.을 Hans Küng, 416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9. 장 폴 샤르트르,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서울: 시공사, 1991), 102. [본문으로]
  10. Naim Stifan Ateek,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N.Y.: Orbis Books, 2008), 191.의 원문을 번역하여 옮겼음. [본문으로]
  11. Hans Küng, 433-434. [본문으로]
  12. Simma Flapan, The Birth of Israel: Myths and Realities(N.Y.: Pantheon Books, 1987), 29. [본문으로]
  13. Simma Flapan, 31. [본문으로]
  14. Hans Küng, 443-444. [본문으로]
  15. Hans Küng, 29-51. [본문으로]
  16. Hans Küng, 52-75. [본문으로]
  17. Hans Küng, 76-103. [본문으로]
  18. Hans Küng, 104-262. [본문으로]
  19. Hans Küng, 263-272. [본문으로]
  20. Hans Küng, 420. [본문으로]
  21. Hans Küng, 761. [본문으로]
  22.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서울: 한울, 2013), 44. [본문으로]
  23. 미야타 미쓰오, 45. [본문으로]
  24. 장 폴 샤르트르,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서울: 시공사, 1991), 340-341.. [본문으로]
  25. Hans Küng, 799. [본문으로]
  26. Hans Küng, 650. [본문으로]
  27. Hans Küng, 651-656. [본문으로]
  28. Hans Küng, 808. [본문으로]
  29. Naim Stifan Ateek,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 176. [본문으로]
  30. 주디스 버틀러, 양효실 역,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서울: 시대의 창, 2016), 228-229. [본문으로]
  31. Hans Küng, 859-876. [본문으로]
  32. Hans Küng, 840. [본문으로]
  33. Colin Chapman, "Evangelicals Islam and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김아영 편, 『이슬람 연구2』(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3), 91-109. [본문으로]
  34.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438-439. [본문으로]
  35. Christopher Wright, The Mission of God, 정옥배 역, 『하나님의 선교』 (서울: IVP, 2013), 93-130. [본문으로]
  36. Christopher Wright, The God I Don't Understand, 전성민 역,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147. [본문으로]
  37. Hans Küng, 814-819. [본문으로]
  38. http://www.kairospalestine.ps/index.php/about-us/kairos-palestine-document [2017.12.23. 접속] [본문으로]
  39.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geneva-2014/statement-on-economic-measures-and-christian-responsibility-toward-israel-and-palestine [2017.12.23. 접속] [본문으로]
  40. 이윤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 기독교사상(2014.09), 25-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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