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이 피다

Book 2016. 7. 25. 01:33



들어가며…


   늦은 저녁시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책상에 홀로 앉아 한국일 교수님이 전해 주신 ‘감자꽃이 피다’를 펼쳐본다. 그리고 이내 박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읽기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약속으로 향하는 전철에서도 박목사님의 메모 글을 읽게 되었다. 


   문득 어제 묵상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삿8:6)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 중에 숙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장로들이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에게 냉정하게 대하는 모습이다. 이유인즉, 기드온의 군대가 아직 미디안의 동맹군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였다는 것과 만약 일이 잘못되어서 나중에 미디안 동맹군들이 알게 된다면 후환이 두려워서 자신의 동족에게도 야박하게 구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 이야기의 종말은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의 징계로 결말을 맺게 된다. 철저한 계산과 이해관계 속에서 행동했던 공동체 지도자들과 소위 ‘이성적 판단’으로 인해 결국 어려운 상황에 놓인 동포를 등지게 되는 아이러니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1. 복음의 본질을 고민하다


   “북한 퍼주기는 빼기가 아니다”(p16)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죽어가는 주위의 형제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것이며, 치밀한 계산에 의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강남군을 지나면서 내 눈에 깡마른 예수님이 들어왔다….1980년 총회 사회부 광주 전남 지역 목회자 사회 선교 훈련 중 현장 경험을 위해 태백시….이후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p143)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월드비전에서 북한 사역을 하시기까지 박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하나님께서 이미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시고자 박 목사님의 인생을 준비시켜 오셨다는 생각이 든다. ‘선교’를 이야기할 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복음과 사회사업의 관계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난 이러한 논리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정한 의미는 개인의 구원과 혼자만의 내세적 구원이 아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와 특별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대한 회복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종’의 숨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고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다가서고 함께 서주는 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일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사58:6-7)


2. 함께 꿈을 꾸다


   지난 십 수 년 간 박목사님의 흥미진진한 북한 사역이야기를 들으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질문 한 가지가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남북을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내었는가?’


   한국의 수많은 학자들과 농업 전문가들이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수차례의 방문을 통해 북한의 관계자들도 동일한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디서 기원하였는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연히 굶어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단순한 일시적 구호가 아닌 식량 자립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하여 국수공장을 시작으로 감자 프로젝트, 그리고 거기에서 부터  파생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되었지만 이보다 더 깊은 동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심연 깊은 곳의 인간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종교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발현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에게 있는 흐릿한 하니님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공산주의나 독재체제를 넘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동일하게 이 정의를 향한 열망이 결국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의와 정의는 바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강조하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 것이다. 공정한 재판과 정의가 실현되는 ‘미슈파트’와 ‘체다카’가 실현되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박목사님의 외침과 설득에는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녹아 있었다. 그리고 이 꿈을 경험한 누구나 이 꿈을 사게 되고 함게 동참하게 되는 놀라운 매력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박 목사님 또한 누군가에 의해 이 꿈을 전달받고 이 꿈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또 꿈을 향한 삶을 몸소 보이셨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3.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실 박목사님의 메모 글들을 보며 자세하게 그리고 여러 미묘한 관계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적어놓은 글귀들을 보며 조마조마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 당시 박목사님이 느꼈을 감정과 갈등 그리고 기도들을 더욱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박형권 참사: 왜 민경련이 월드비전과 사업을 하게 되었는가? 실제로는 월드비전도 ‘민화협’과 상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월드비전이 해오고 있는 사업은 자선사업, 기증사업에  그치지 않고 알곡종자 100알을 주어 그것으로 알곡 100만톤의 식량을 생산해내는 개발, 기술협력사업이라고 판단해서 민경련이 상대가 되었습니다”(p251)


   함께 일하는 것은 어렵다. 특별히 내 생각에는 한국 사람들끼리도 함께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거기에 국제본부와의 의견조율까지도 더해져야 하니 그 관계는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문득 문득 박목사님의 글 속에서 북한 연구원들을 대한 마음을 나누실 때 마다 느낄 수 있는 마음은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겸손하게 맞춰주고 그러나 지혜롭게 필요한 말들을 하신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모습에 도전을 받았다.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분명히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고 그 희생을 담보하여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박목사님의 겸손한 삶과 다른 사람들을 높이는 자세를 통하여 북한의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 또한 그분의 겸손함에 좋은 영향을 받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몇 해 전 동독 출신의 독일 목회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목사님들이 하신 이야기 중에서 ‘남북이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경제체제를 동경하면서 고향을 떠나고 자신들의 체제를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아직도 우리가 경제적 우위와 시혜자로서의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면 통일 이후의 갈등의 골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깊어지게 될 것이다. 독일의 준더마이어 교수는 본 회퍼가 말한 ‘타자를 위한 교회’(church for others)’를 넘어서서 ‘타자와 함께 하는 교회(church with others)’로 나아가햐 한다고 역설했는데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박목사님의 겸손함은 바로 이러한 ‘타자와 함께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시는 귀한 리더십의 예가 될 것이다. 


   기도하시는 박목사님 부부의 모습을 보며 북한의 가뭄을 위해 기도 부탁하는 리광수 부원장의 모습이 눈에 환히 그려진다. 열정적으로 자료들을 준비해서 가르치시는 한국의 교수님들의 진정성을 보며 북한 연구원들 또한 감동받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업무담당자로 또 눈에 보이는 결과를 좇는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관계가 끊어지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실 초보 목사로서 이제 첫발을 내딛는 나에게 박목사님 부부의 기도와 예배의 모습은 내 스스로를 부끄럽게 돌아보게 되었다. 순간순간의 결정 앞에서 진심으로 기도하시고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길을 찾으려는 진지한 모습 속에서 프로젝트 담당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서의 자세를 돌아보게 되었다. 메모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씀과 박 목사님의 깊은 묵상의 흔적들을 보게 된다.


4. 삶은 공명된다


   1997년도에 처음으로 서울대 농생물학과와 농화학과가 합쳐져서 응용생물화학부로 통합되었고 나는 그 첫 학부생으로 대학 4년을 마쳤다. 2학년이 끝날 즈음에 농생물전공과 농화학 전공으로 나뉘게 되는데, 그 당시 몽골에서 농업선교를 사역하시던 한 선교사님의 권유로 농생물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군복무를 몽골에서 연구원으로 해볼 심산으로 선택했지만 그 당시 국회입법통과가 지연되면서 학부생으로 국제봉사단원으로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아쉽게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공부하는 학부기간 내내 내 전공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왠지  빠르게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이나 다른 기술 분야와는 달리 농업생명관련 분야는 왠지 시대에 뒤쳐지고 왠지 모를 자격지심이 들게 하는 전공이었다. 그리고 난 이러한 전공과는 무관하게 선교단체 훈련 리더로 해외사역을 감당 하다가 서른 중반이 되서야 신학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글 중간 중간에 나오는 다양한 익숙한 용어들과 반가운 교수님들의 이름만으로도 내가 목회자로서 앞으로 어떠한 삶의 방향을 갖게 될지 그 방향을 가늠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 젊은 시절 고민하고 생각했던 그리고 기도했던 많은 삶의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하나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기게 된다. 박 목사님의 삶의 이야기가 이렇게 또 한명의 목회자 초년생에게 공명되고 있는 것이다. 


   “총회17년 사역을 마친 후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마운 충고를 마주하고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 결국 월드비전을 택했다. 굶주리는 북한을 위해 긴급구호를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을 느꼈기에 하나님의 장중에 맡겼다”(p467)


   사실 개인적으로 삶의 전환기를 경험하고 있는 시기이다. 그러나 박목사님과 사모님의 삶의 교훈은 내가 지금 바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강권하심과 은혜’를 경험해야 하는 시간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마치며…

   최근 들어 북한의 핵개발과 이에 따른 개성공단 폐쇄 조치, 사드 배치 등등 남북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경직되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박 목사님과 여러 동역자들이 신중하게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던 ‘감자 프로젝트’의 진행 사항에는 큰 영향은 없는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박 목사님이 후기에 쓰신 말처럼 우리가 어떠한 정치의 흐름이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일부분일 뿐이다. 온전히 정의와 공의가 회복되는 통일한국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자 한민족의 일원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부탁하신 복음적 사명의 삶을 감당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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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shu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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