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주의운동의 평화공존 가능성 모색


황인성


Ⅰ. 서론

   20세기를 전후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정책은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결국 1차,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대인들의 핍박은 극에 달하였고 때마침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한 ‘시온주의운동’이 태동되었고 여러 열강들 사이에서 마침내 팔레스타인 지역에 그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순수한 종교운동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정체적 세속적 정부구상에 대한 욕구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그리고 1세기가 지나도록 아직도 그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어 보이는 듯 하다.[각주:1]

   팔레스타인 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하는 시온주의 운동은 어떻게 발생하였고 또 그 특징은 어떠한지, 특별히 유대교 정통주의와의 비교를 통한 종교적 의미와 시온주의 운동의 차이점과 유사성을 살펴보고 미래적 제언으로 앞으로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에 있어서 평화를 모색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시도들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또한 어떠한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Ⅱ. 시온주의 운동의 역사


   예수의 지상 사역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폭동이 일어나고 이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파괴하면서 2000여 년 간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유배생활이 지속되어 왔다. 기독교가 박해의 시기를 거쳐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로 인정되면서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차별은 점점 심화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유럽과 이슬람 국가들에 상처를 남겨 준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심지어 종교개혁의 시기에도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유대인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각주:2]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 속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서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오히려 이러한 유대교의 사회적 지위와 도덕성을 이용한 선교적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각주:3] 그러나 유대인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속한 국가나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전을 꿈꾸던 유대계 철학자들이나 정치가들도 자신들의 꿈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로 다가오면서 더욱 심해지는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민족주의로 집결하는 가운데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한 불안감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동화가 아닌 이제는 자신들의 땅으로 모이는 것에 관심이 커져가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여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유대교에서 강조되는 ‘선택받은 민족’과 ‘약속의 땅’, ‘예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 개념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더욱 ‘시온’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188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가 살해된 배후에 ‘유대인’이 있었다는 소문에 의해 시작된 유대인 박해는 혁명의 시기였던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유대인이었던 프랑스 장군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1894년 조국 프랑스를 배신하고 독일을 도왔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으나 오랜 시간 후에 명예가 회복되기도 하였다.[각주:4] 그리고 20세기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독일의 홀러코스트 등은 유럽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가 이제는 참아만 하는 시련이 아닌 당당하게 맞서거나 완벽하게 회피해야하는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한스큉은 이러한 시온주의 태동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홀로코스트’가 시온주의 운동의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홀로코스트 자체가 시온주의 운동의 시발점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주:5]그리고 그는 시온주의 운동은 20세기 전후로 강성해지고 있는 제국주의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운동이지 순순한 ‘시온’을 소망하는 종교적 운동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각주:6]예후다 알카라(Yehudah Alkalai), 츠비 히르시 칼리셔(Zevi Hirsch Kalischer),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Elezer Ben Yehuda), 모세스 헤스(Moses Hess)와 같은 랍비와 사회 혁명가들에 의해 시온주의 운동의 발판이 마련되었고 1882년 공식적으로 첫 이스라엘 ‘이주’(알리야, Aliyah)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레온 핀스커(Leon Pinsker)에 의해 정치적 시온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각주:7]


‘올바르고 유일한 치유책은 자신의 땅과 토대 위에서 유대인 국가와 유대인 민족을 만드는 것이고 유대인이 스스로 해방되는 것이며, 자신의 고향을 얻음으로써 다른 나라와 동등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각주:8]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종교적인 측면이 아닌 민족적 측면에서 유대인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땅을 가져야 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고 글과 정치력에 있어서 뛰어난 그는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유대인들의 국가 설립을 위한 제1회 세계시오니스트 총회를 개최하게 된다. 


1) 유대의 농업 노동자나 공업 노동자의 손을 빌어서, 적당한 방법으로 팔레스티나를 개척한다. 2) 각국의 법에 맞는 국내, 국제 단체의 지원을 얻어, 세계의 유대주의를 통합하고 조직화 한다. 3) 유대의 민족의식과 민족감정을 강화하고 유지한다. 4) 시오니즘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정부로서의 권한을 얻기 위해 예비적인 조치를 취한다.[각주:9]


   이와 같이 첫 번째 시오니스트 총회를 통하여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은 되었으나 정확히 어디에 정착할지에 대해서는 이때까지만 해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을 통하여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귀환을 구체화 시키게 된다. 하임 바이츠만(Chaim Wezmann)은 영국 수상 제임스 아서 벨푸어(James Arthur Balfour)와의 협상을 통하여 ‘민족의 땅’으로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받게 될 것에 대한 협상을 이루었고 그렇게 ‘벨푸어 선언’이 공포 되었다. 


외무부

1917년 11월 2일

Rothschild에게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염원에 대한 탄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승인으로서 다음의 공감의 선언을 보냅니다.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적 거처(national home)을 설립하는 것에 호의적인 입장이며 이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있는 비유대인 공동체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에 편견을 주는 어떠한 시도도 하면 안 되며,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들과 정치적 위치에도 편견을 주는 어떠한 시도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합니다.”

당신이 이 선언을 시온주의자 연대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길 바랍니다. 

아더 제임스 벨푸어[각주:10]


   이후 영국은 소용돌이치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문제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유엔에 넘기게 되었고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에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대인 인구수보다 인구가 두배나 더 많았던 아랍인은 오히려 더 작은 땅을 분할 받았다. 아랍진영은 결국 이  분할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1948년 4월 15일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 Gurion)을 수상으로 하는 국가를 설립하게 된다. 한스큉은 이 당시 아랍이 유엔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국가로 서는 기회를 잃어버린 실수라고 지적하고 있다.[각주:11]



그림1) UN 분할국가 중재안[각주:12]


   플래판은 물론 이스라엘이 이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향후 이스라엘 국가 영토 확장을 위한 발판이었지 궁극적인 합의점을 아니었을 것이라는데에 방점을 두고 있다.[각주:13]

   그러나 실제로 현재의 이스라엘의 국경은 1947년 UN의 중재안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로 선포된 이후 비유대인들을 불법체류자로 규정하고 수많은 핍박과 전쟁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단순히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 유대인들만의 갈등이 아닌 주변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대결구도로 번졌고 국가 간의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나이 전쟁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56년 10월에 발발한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점령을 끝이 났고 이후 소련과 미국의 중재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6일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선제 공격함으로써 시나이반도,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였다. 1982년에는 레바논을 침공하기도 하였다.[각주:14]


Ⅲ. 시온주의는 유대교를 대변하고 있는가?


   이처럼 20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20세기를 넘어오면서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의 힘의 논리를 배경으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한 시온주의 운동은 과연 유대교와 얼마만큼의 관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가령 유대교의 신앙의 가르침이 그대로 표출 된 것이 시온주의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반대로 이 운동은 종교역인 측면은 배제된 채 순전한 ‘유대인’중심의 또 다른 민족적이며 세속적인 정치운동으로만 볼 것인가?의 긴장관계 속에 놓여있다. 유대교가 강조하고 있는 교리적 측면에서 어떠한 부분이 시온주의와 맞닿아 있고 또 어떠한 부분이 종교를 넘어선 세속적 특징인지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기본적으로 아브라함을 육적인 혹은 영적인 아버지와 그 계승적 관계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관점은 각각의 종교에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유대교의 아브라함 전통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과 이슬람 또한 아브라함에 대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다른 두 종교가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한스큉은 지적하고 있다.

   유대교 공동체는 형성되는 공동체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갑자기 시작된 민족도 아니며 그 민족의 시작을 정확히 역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한 가지 논점은 유대교가 마치 유대인을 인류의 시초 부족으로 보고 인류역사가 유대인,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오류임을 한스큉은 지적하고 있다.[각주:15] 성서 초기에 나오는 아담 사상은 성서의 보편주의를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장소가 있음을 한스큉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각주:16]

   성서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출애굽, 시내산 언약 그리고 가나안 정착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다. 그 중 모세는 모든 종교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특별히 기독교에서는 모세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열등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지만 그 어떤 인물 보다도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요컨대 유대교는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이루어진 계약 공동체이며 그와의 언약을 통해서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이주하고 정착하게 되는 것이 유대교가 바라고는 성서의 중심주제일 것이다.[각주:17]

   한스큉은 성서를 근거로 한 구약의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서술한 이후 예수 시대 이후 유대교가 어떻게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그중 눈여겨 볼 점은 왜 유대교는 중세시대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독교의 변화와 같은 일종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점이다. 한스큉은 이에 대하여 포로기 이후 유대교는 성서보다도 바리새인과 랍비에 의해 주도되는 미쉬나와 탈무드 전통에 확고한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전 세계로 퍼진 다이스포라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전통과 율법을 해석해줄 수 있는 랍비의 권위가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고한 랍비-회당 패러다임을 통하여 헬라화되고 계몽화되었던 기독교와는 달리 유대교는 비교적 자신들의 전통을 온건하게 지켜올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물론 시대별로 다시 성서로 돌아가고자 하는 카라이파나 성서의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카발라파와 같은 분파들이 생겨나기는 하였으나 십자군 전쟁이나 다른 시대적 상황 속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각주:18]

   이러한 랍비-회당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한 종교배타주의로 인하여 유대교는 황제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 수많은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각주:19]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유대교에 대한 정의는 더욱 어려워졌다. 국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의 인구보다 10배가 더 많다. 또한 히브리어를 하지 못하는 유대인들도 상당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대전과 내전 등을 거치면서 종교 자체를 갖고 있지 않는 유대인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교를 고수하는 정통주의자들부터 종교자체에 무관심한 세속적 유대인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있다. 시온주의 운동 초기의 사상가나 정치가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개념으로서의 독립을 원한 측면이 더 크다. 예를 들어 헤르츨은 시온주의 운동의 태동에 크게 기여한 인물인데 그는 국가적 차원에서 종교적 정통주의가 강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각주:20] 그는 시온주의 운동의 결과로 세워지는 국가 이스라엘이 신정체제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이미 유대교 전통주의자들이 먼저 정착한 상황에서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에 벤 구리온은 종교적 정통주의자들의 의견을 사회, 정치적 영역에 반양하기에 이르렀다. 결혼, 이혼 그리고 많은 삶의 영역에서 정통적인 유대교 양식이 초기 국가 이스라엘에서 나타나게 된 원인이었다.[각주:21]

   홀로코스트는 근대의 유대인들이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리처드 루벤스타인(Richard Rubenstein)은 유대인수용소에서 신의 죽음이 최종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신의 존재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는 단순한 사변적 논리가 아닌 경험적 허무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이었다.[각주:22] 샬롬 벤코린(Shalom Ben-Chorin)은 아우슈비츠는 결국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대신 고난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각주:23]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국가들도 기독교 국가에서 세속사회로의 전이과정이 더욱 빨라졌던 것처럼 유대인들에게도 종교적 유대인보다는 초월적 신에 대한 회의감과 종교성을 넘어선 유대민족운동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시온주의 운동은 전통적 유대교 신앙과의 거리감이 생겨나게 되었다. 

   또한 전 세계에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인 흡인력 보다는 정치적,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국가의 보호 아래에서 유대민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줄 프리드만 또한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아래 유대인이 의미를 갖게 됨을 강조하였다.[각주:24]

   요컨대 시온주의 운동은 신앙을 강조하는 전통적 유대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수세기에 걸친 핍박과 종족말살 정책의 현실 속에서 기존의 신앙에 대한 회의감과 그러나 동시에 ‘시온’을 염원하는 민족적 정서가 결부되어 시온주의운동이라는 염원을 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다른 말로 해석하면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서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되었고 지금도 그 힘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지속적인 갈등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Ⅳ. 시온주의의 평화모색 가능성 탐구


 1. 마틴 부버의 사상을 통한 공존의 가능성


   팔레스타인 지역 평화를 위한 접근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과거 정통주의 유대교에 근거한 유대인들의 강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며 둘째로 근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시온주의 운동과 같이 종교적인 측면 보다는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인종차별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다. 셋째로 포스트 모더니즘적 접근으로 모두의 생존을 위한 실용주의와 현실주의적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다.[각주:25]

   어떤 의미에서 유대교의 교리적 가르침보다 훨씬 더 배타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들과 또 다른 종교와의 타협과 평화를 위한 여지의 공간이 남아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먼저는 마틴 부버의 사상을 통하여 기본적으로 양진영이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에 대해 고민해보고 종교 간의 대화 차원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특별히 유대교와 이슬람의 대화에서 공통의 기반을 두고 풀어나갈 이야기의 가능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논의들과 활동들을 위에 살펴 본 배경에 비추어 평가해봄으로써 앞으로 시온주의 운동 더 나아가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미래적 활동에 대한 제언을 해보고자 한다. 

   마르틴 부버는 유럽 계몽주의의 근간을 세운 ‘관념철학’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철학의 시작은 ‘인식의 주체’가 아닌 ‘존재’의 관계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I-It이 아닌 I-Thou의 관계설정인 것이다. cogito(나는 생각한다)보다 relatio(관계)가 더 우선시 된다고 말한 것이다.[각주:26] 그는 1939년 취리히에서 열린 16차 시오니스트 총회에서 지금 유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민족 활성화나 히브리어 개선이 아닌 나-너의 관계 안에서 오는 ‘히브리적 휴머니즘’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당시 그의 발언은 시온주의자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관계중심, 타인을 생각하는 사상은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에게 사상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부버의 사상은 결국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 근본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근대화와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 하나님을 지워가려는 대부분의 계몽주의 운동에 반대하며 부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대체 불가성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관계적 나-너의 구조 속에서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말하였다.[각주:27]

   부버도 주장하였던 것처럼 실제적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진영의 정치적인 타협점이 필요하다. 한스큉은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는데 첫째로 이스라엘 주변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경계선을 보장하는 것이며 둘째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일부 영토 반환과 요르단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셋째로 팔레스타인 민족이 주권국가로서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28] 이와 동시에 예루살렘은 두 진영이 함께 공존하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29]

   한나 아렌트, 마그네스 등도 이민족주의 국가 설립을 지지했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 내 비유대인들 또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동일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아렌트는 민족주의 중심의 국가 건설이 결국 수많은 난민을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시온주의 운동을 반대하였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맞는 연방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각주:30]


 2.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평화 추구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한스큉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공통 영역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가까워질 수 없는 몇 가지의 영역을 언급하였다. 기독교의 교리의 출발을 삼위일체에 근간으로 한 신학으로 삼는 것은 유대교와의 대화에서 쉽게 단절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유일신 사상의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서 죽는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이며 영원한 인류의 구원자이자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모두가 합의 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주제에 대하여 몰트만과 같은 학자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으나 한스큉은 이 또한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주체가 되어서 죽는 모순적 상황이나 입증되지 않는 많은 고난 이론을 제시하는 것보다 실존적 상황 안에서 시간을 갖고 침묵하는 신학이 오히려 서로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한다.[각주:31]

   유대교와 기독교는 특별히 토라라는 공통된 기반과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종교 간의 이견이 있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특징에 먼저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한 유대인의 모습을 입고 온 사람이었다. 나사렛의 한 목수의 아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에게 메시야 자의식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상관없이 유대인들에게는 불경건한 것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후의 메시야 선포는 별개로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은 철저히 유대적이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유대교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와 유대교인은 시편이나 다른 문헌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전통이 있으며 무슬림의 경전이 꾸란의 몇몇 기도문 신학적으로 문제 없이 세 진영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한스큉의 주장이다.[각주:32] 이러한 기도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확인 된다면 바위 돔 사원을 사용하는데에 있어서도 무슬림과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도 기도를 위한 장소를 쓸 수 있는 평화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 중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를 통한 호전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주장 외에 온건한 이슬람 진영은 평화적인 접근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반유대주의'에 도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이슬람 대학에서는 'Islamicjerusalem'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이슬람 성구와 전통에 근거하면 예루살렘은 평화와 갈등 해소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과 꾸란의 올바른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공통된 주장을 확인하면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33]


 3.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


   이스라엘의 귀환 운동을 주장하는 소위 '알리야 운동'에서는 20세기 초 이스라엘의 건국을 이미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말씀으로 그 근간을 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종말의 시대에 구약 예언의 성취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혈통적인 후손들, 곧 다윗 왕으로 시작된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는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의 세대주의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까지 이슈가 되었던 '백투예루살렘' 운동이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문자 그대로 회복될 것인데 예루살렘도 지금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재림이 이뤄지므로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필찬은 이스라엘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 그 뒤로는 에덴의 아담을 배경으로 하고 신약에서는 교회에서 그 종말적 성취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위의 주장들은 성경적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고 있다.[각주:34]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자신의 책, 『하나님의 선교』에서 야웨는 이스라엘만을 위해 존재하는 편협한 지역신이 아닌 다른 어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 우주적인 하나님이라는 매우 중요한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러한 야웨에 대한 이해는 선교의 성경적 기초가 아닌 성경의 선교적 기초라는 해석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매우 자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사이에서 큰 단절을 느꼈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을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신약의 하나님을 온 열방의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성경을 통전적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트는 이 부분에 대하여 구약의 하나님이 단순히 이스라엘에만 묶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관점으로 풀어감으로써 신약의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모습과 충돌되지 않는 것이다.[각주:35]

   자칫 선민주의에 빠질 수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으로 다가가시며 때로는 언약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시기도 하며 또한 예언자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또한 바벨론의 포로시기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하나님, 고레스의 하나님도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이트의 아모스 9장 7절의 말씀 해석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아모스의 중심주제인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9장 7절의 말씀과의 불일치 속에서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으나 라이트의 ‘이스라엘만을 편애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해석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일한 관점으로 그의 다른 책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각주:36]

   이것은 비단 국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 어떤 다른 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모든 민족 위에 신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이러한 야웨의 보편성과 유일성에 도전을 받는다면 그 도전의 주체가 설령 언약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민족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심판하시고 원래의 약속으로 돌이키신다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모습이 혹 바벨론 포로기 이전 하나님과 원수 되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있지는 않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스큉은 기독교인으로서 이스라엘 국가와의 관계는 비판적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첫째로 이스라엘을 국가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인정하되 팔레스타인 내에서 그들의 땅의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신학을 발전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서의 이스라엘에 대한 상징성이나 홀로코스트 사건 이후의 동정심만으로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주며 위에서 언급한 종교 간의 대화를 열린 자세를 갖고 임할 수 있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37]

   이러한 팔레스타인 지역 내 기독교의 역할에 대하여 최근에 ‘카이로스 팔레스타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각주:38] 팔레스타인 내 거주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서 해야 할 사명과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문서를 발표한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공존하게 하셨으므로 이들의 권리를 빼앗고 박탈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정의한 것이므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WCC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2014년, WCC Central Committee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판에 대한 경제지표와 기독교의 책임’(Statement on Economic Measures and Christian Responsibility toward Israel and Palestine)[각주:39]을 발표하였다. 특별히 미국 장로교회와 연합감리교회의 예를 들면서 이스라엘의 불법적 지역 점령을 지지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불매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적극적인 행동을 통하여 약자들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형태의 운동도 전개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윤희는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한국교회가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 있다.[각주:40] 첫째로는 평화의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 읽고 공부하는 모임이다. 둘째로 불매운동(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제재(Sanction)운동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셋째로 기존의 성진순례는 이스라엘 국가의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므로 대안적 성지순례를 진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기도 하다. 


Ⅴ. 결론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교 정통주의와는 사뭇 다르게 유대인의 민족성을 사회적이며 세속적으로 강조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온주의 운동의 결과로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되는데 있어서 다양한 정치적 긴장과 특별히 다른 나라들의 개입으로 인한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힘에 의한 이주정책으로 인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에 기존에 살고 있는 수많은 비유대인들과의 갈등이 생겨났고 이 갈등 양상은 더욱 커저 가다가 결국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 번져가기도 했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온주의 운동에 있어서 타민족과의 평화 공존을 위한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가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유대인으로서 관념철학을 넘어 상대방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나와 너’의 관계성을 강조한 마틴 부버의 사상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쳤고 두 민족이 함께 공존하는 현실적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심지어 종교를 갖고 있지 않는 무신론적 유대인들과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특별히 이 세 종교는 동일한 뿌리에서 시작되었고 공통분모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첨예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며, 구원자이며, 심판자이신 한분 하나님의 신앙 아래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대화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국가 이스라엘을 성서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지 않고 연약한 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부정의한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며 평화공존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비판적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이처럼 정통주의와 전근대적인 민족주의를 넘어서 상대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시온주의 운동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참고도서


1. 번역도서

Bulter, Judith. 양효실 역.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서울: 시대의 창, 2016.

Chapman, Colin. "Evangelicals Islam and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김아영 편. 『이슬람연구2』.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3.

Küng, Hans. Das Judentum: Die religiöse Situation der Zeit. 이신건 외 2인 역. 『한스큉의 유대교』. 서울: 시와진실, 2015.

Mitho, Miyata. 박은영•양현혜 역.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서울: 한울, 2013.

Sartre, Jean-Paul.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 서울: 시공사, 1991.

Wright, Christopher. The God I Don't Understand. 전성민 역.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__________________. The Mission of God. 정옥배 역. 『하나님의 선교』. 서울: IVP, 2013.


2. 서양도서

Ateek, Naim Stifan.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 N.Y.: Orbis Books, 2008.

Flapan, Simma. The Birth of Israel: Myths and Realities. N.Y.: Pantheon Books, 1987.

Harnack, Adolf.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PA: Harper Torch Books, 1962.

Pinsker, I. "Autoemanzipatio!." Ein Mahnruf an seine Stammesgenossen von einem russischen Juden. Brlin 1882.


3. 국내도서

이윤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기독교사상(2014.09), 

25-41.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4. 기타자료

http://www.kairospalestine.ps/index.php/about-us/kairos-palestine-document [2017.12.23. 접속]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geneva-2014/statement-on-economic-measures-and-christian-responsibility-toward-israel-and-palestine [2017.12.23. 접속]


  1. 최근 미 대통령 도날들 트럼트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발언은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본문으로]
  2. Hans Küng, Das Judentum: Die religiöse Situation der Zeit, 이신건 외 2인 역, 『한스큉의 유대교』(서울: 시와진실, 2015), 272-277. [본문으로]
  3. Adolf Harnack, The Mission and Expansion of Christianity in the First Three Centuries (PA: Harper Torch Books, 1962), 1-35. [본문으로]
  4. Hans Küng, 338. [본문으로]
  5. Hans Küng, 412. [본문으로]
  6. Hans Küng, 413-414. [본문으로]
  7. Hans Küng, 414-415. [본문으로]
  8. I. Pinsker, "Autoemanzipatio!". Ein Mahnruf an seine Stammesgenossen von einem russischen Juden, Brlin 1882, 35.을 Hans Küng, 416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9. 장 폴 샤르트르,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서울: 시공사, 1991), 102. [본문으로]
  10. Naim Stifan Ateek,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N.Y.: Orbis Books, 2008), 191.의 원문을 번역하여 옮겼음. [본문으로]
  11. Hans Küng, 433-434. [본문으로]
  12. Simma Flapan, The Birth of Israel: Myths and Realities(N.Y.: Pantheon Books, 1987), 29. [본문으로]
  13. Simma Flapan, 31. [본문으로]
  14. Hans Küng, 443-444. [본문으로]
  15. Hans Küng, 29-51. [본문으로]
  16. Hans Küng, 52-75. [본문으로]
  17. Hans Küng, 76-103. [본문으로]
  18. Hans Küng, 104-262. [본문으로]
  19. Hans Küng, 263-272. [본문으로]
  20. Hans Küng, 420. [본문으로]
  21. Hans Küng, 761. [본문으로]
  22. 미야타 미쓰오,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서울: 한울, 2013), 44. [본문으로]
  23. 미야타 미쓰오, 45. [본문으로]
  24. 장 폴 샤르트르, 오정환 역, 『아랍과 이스라엘』(서울: 시공사, 1991), 340-341.. [본문으로]
  25. Hans Küng, 799. [본문으로]
  26. Hans Küng, 650. [본문으로]
  27. Hans Küng, 651-656. [본문으로]
  28. Hans Küng, 808. [본문으로]
  29. Naim Stifan Ateek, A Palestinian Christian Cry for Reconciliation, 176. [본문으로]
  30. 주디스 버틀러, 양효실 역,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서울: 시대의 창, 2016), 228-229. [본문으로]
  31. Hans Küng, 859-876. [본문으로]
  32. Hans Küng, 840. [본문으로]
  33. Colin Chapman, "Evangelicals Islam and the Israeli-Palestinian Conflict", 김아영 편, 『이슬람 연구2』(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13), 91-109. [본문으로]
  34.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438-439. [본문으로]
  35. Christopher Wright, The Mission of God, 정옥배 역, 『하나님의 선교』 (서울: IVP, 2013), 93-130. [본문으로]
  36. Christopher Wright, The God I Don't Understand, 전성민 역, 『성경의 핵심 난제들에 답하다』(서울: 새물결플러스, 2013), 147. [본문으로]
  37. Hans Küng, 814-819. [본문으로]
  38. http://www.kairospalestine.ps/index.php/about-us/kairos-palestine-document [2017.12.23. 접속] [본문으로]
  39. https://www.oikoumene.org/en/resources/documents/central-committee/geneva-2014/statement-on-economic-measures-and-christian-responsibility-toward-israel-and-palestine [2017.12.23. 접속] [본문으로]
  40. 이윤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 기독교사상(2014.09), 25-4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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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기독교를 만나다
-수원성교회 선교회보 기고글

황인성 목사(바른교회아카데미)

들어가며
올해는 루터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당시 로마카톨릭 교회의 교황숭배사상과 성전건축을 위한 무리한 헌금 강요 그리고 사제들에게만 국한된 성찬권과 성경 번역 금지 등에 대항하여 루터는 95개의 반박문을 써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고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츠빙글리, 칼뱅, 존 녹스와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듯 개혁의 정신으로 시작된 유럽의 개신교(통상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하는 용어로 본다면 개신교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는 50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유럽의 상황
안타깝게도 유럽 교회의 현실은 일단 눈에 보이는 수치로 보았을 때 분명한 쇠락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1800-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독교 국가’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지금은 유럽 국가들 내에서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기독교인의 비율은 10%내외 이거나 그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프랑스의 경우 물론 카톨릭 국가이기는 하지만 개신교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쇠퇴의 이유
지난 100여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학자들이 왜 개신교가 시작되었던 유럽의 교회들이 쇠퇴하고 있는가를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다양하고 또한 수많은 민족들과 각자만의 깊은 역사를 가진 유럽 나라 각각의 특수한 상황과 이유가 있겠으나 두 가지 큰 주요 원인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18세기부터 이미 시작된 유럽의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초반 서구 문명이 유입 되면서 우리 전통에 대한 고민과 때로는 단절을 경험 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유교적인 문화와 불교적인 문화, 때로는 민속 신앙의 요소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약화된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에게도 근대사회 더 나아가 현대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극복해야할 과거의 봉건성이 있는데 이 대부분이 교회와 관계된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식민지배에 대항하고 나라가 부강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기독교 받아들이는 신 문물인 것에 반해 유럽인들에게 기독교는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세속화 과정’으로 설명하려고 했고 어떤 이들은 이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 국가’에서 세속화 된 근대 사회로 넘어오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두번째 이유인 전쟁의 경험입니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유럽사회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전쟁터로 변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과 그 개혁 신앙이 이제는 히틀러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국가들끼리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웃 형제 자매들을 죽인 것 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유럽인들의 마음 속에 더 이상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이기적인 하나님’ 혹은 사람들의 고통에 위로하거나 답을 주지 않는 ‘숨어있는 하나님’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필요한 사역들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유럽사회 전반에 퍼져있고 그것에 대해서 지난 반세기 동안 급변하는 산업화, 자유경제주의의 발전, 수 많은 내전들이 각 나라의 특수적 상황과 맞물려 교회가 현재 처한 다양한 상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의 교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요? 첫째는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급격한 감소입니다. 물론 여전히 태어나서 유아 세례를 받고, 결혼을 교회에서 하고 죽으면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는 기독교 문화는 유지되고 있으나 실제로 일상에서 교회에 나와 예배하거나, 주일 성수, 성경공부, 교회를 통한 사회봉사는 매우 약화된 상황입니다. 한 예로 몇 년 전 덴마크의 한 루터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약 300-400명은 들어갈 수 있는 큰 예배당이었는데 20-30여명의 사람들만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유아 세례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예배가 진행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현지인들이 마치 찬송가를 처음 부르는 것처럼 노래를 낯설어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예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은 아이의 유아세례를 축하하러 온 가족들이었고 평소에는 교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날 그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한 교인은 코에 콧 줄을 끼고 휠체어에 의지한 할머니 한 분이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가나안 성도’(기독교인이지만 교회에 ‘안나가’는 성도)와 마찬가지로 유럽은 이미 본인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정기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이들이 다시 공동체에 나와서 관계를 통한 정기적인 신앙생활을 회복하고 유지 할지에 대한 도전이 남아있습니다.
둘째로 사역자의 감소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신학교들은 학생수가 감소했을 뿐 아니라 어떤 신학교들은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현재 장신대도 지방의 경우 미달인 경우가 생겨나고 있고 서울의 경우도 매해 12명씩 인원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역자들의 숫자가 감소했습니다. 한 명의 목사가 4-5개의 교회를 돌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없는 교회는 평신도들이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기도 합니다. 설사 목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목회자들은 교회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지역의 세례, 결혼, 장례를 홀로 다 감당해야 하므로 성도들의 신앙교육이나 깊은 교제를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셋째 외부적으로는 이주민들의 증가를 들 수 있습니다. 과거 식민주의와 냉전시대의 부작용으로 새롭게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국가들과 중동의 정권 교체는 안타까운 내전과 종족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인해 인근의 유럽으로 피난을 오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규모가 커져가고 있고 이는 유럽사회 전체의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올해에만 벌써 지중해를 넘어오다 익사한 피난민들이 1000명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로마제국 멸망의 한 원인을 동쪽 훈족의 침입을 피해 중앙유럽으로 게르만족이 대거 이주한 것을 꼽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은 이와 비슷한 위기감과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해외선교가 아닌 자신의 교회들을 다시 세우고 또한 이민자 유입 상황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희망과 도전
한국의 기독교는 지난 130여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제주도와 산둥 반도를 비롯한 해외 선교가 동시에 일어난 매우 선교 지항적인 교회적 특징이 있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한 형제요 자매인 유럽의 교회들에 대한 사랑의 책임이 있습니다. 유럽의 기독교 숫자가 줄었으므로 한국 교회가 목회자들을 많이 보내고 재정을 지원하면 된다는 일차원적인 해법은 효력이 없습니다. 먼저는 서로의 기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계설정이 우선입니다. 한국 교회는 외형적 크기의 성장을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유럽 교회의 역사를 배우고 또 현재의 복잡한 상황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모든 선교지가 장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해가야 하지만 특별히 유렵 지역은 타 지역 선교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럽 교회들 또한 자신들 스스로가 기독교의 종주국이라는 교만을 내려놓고 현재 비 서구권 국가들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다양한 교회 활동들을 연구하고 자신이 속한 교회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몇 주 전 안광수 목사님과 몇몇 목사님들과 함께 독일 루터 현지 교회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의 건강한 교회들을 연구한 독일 목회자들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 목회자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독일의 교회들은 나라에서 세금을 걷어 총회를 통해 교역자들에게 사례를 주는 구조여서 중앙 집권적이고 총회 중심의 일이 많습니다. 어떤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일관적이고 집중적인 효과를 볼 수 있으나 지역의 각 교회가 유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역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됩니다. 이번 방문에서 흥미롭게 느꼈던 점은 한국을 방문했던 한 독일 목사님이 자신의 지역교회에서 한국에서 보고 연구했던 실제적인 사역을 적용하여 사역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작지만 그리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배움을 통해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치며
현재 유럽 기독교의 상황을 단순히 숫자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 이면에는 기독교와 관계된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고 다양한 민족들이 얽힌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유럽 선교를 위하여 먼저 우리는 유럽의 기독교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현재 급변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 특별히 난민들과 민족 갈등에 대한 소식들을 지켜보며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겸손한 마음으로 유럽교회들과 연합 사역을 통한 상호 배움을 통하여 각자의 교회에 필요한 은사들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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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 사진_번역_170522_황인성.pdf




매우 우연치 않은 기회가 생겨 위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물론 번역본이 출판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활동했던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에 대한 소논문들과 

그 당시 선교사들이 찍었던 희귀한 사진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사진 몇장을 넘겨가며 내용을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러한 감정은 복음 하나만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헌신을 마다하지 않던 젊은 선교사들의 숭고한 사명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복음에 목말라 하며 갈듭해 하던 한민족 나의 신앙의 선배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며칠동안 사진 속의 수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어떠한 길을 지금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번 기회가 되신다면 빌려서 보시라~ 영어에 어려움이 있다면 엉성한 한글 번역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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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사회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의론적 관점에서의 평가


황인성


.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교회 내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면서 출발선 자체가 불리한 청년들의 실존적 고민을 마주하게 되었다. 빚을 내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직이 되지 않아서 이상 서울에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 것이다. 청년들이 거주할 있는인간다운 삶의 공간 대해서 쉐어 하우스나 주택협동조합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이나 안정적인 공무원 사회를 선호하는 청년들의 순수한 바람과는 달리 신입사원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의 단면으로 보면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필요한정의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평등 혹은 복지 국가를 말하면 떠오르는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들의 분배정의를 실현해가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최근 들어 북유럽 나라 안에서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질문이 생기게 되었다. 동시에 권의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경제학자들의 글을 보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면서행복지수 1’, ‘사회적 평등지수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에게 이렇게 박한 평가를 내릴 있을까 하는 의심어린 호기심 또한 생기게 되었다

    짧은 논고이지만 북유럽 특별히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특별히 최근 들어 이들의 복지정책에 대해 평가하는 가지의 글들을 소개하며 이러한 사회 민주주의의 분배적 정의를 정의론의 관점에서 평가해보고 또한 현재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있을지에 대해 짧게 언급해 보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한국 교회, 특별히 한국의 청년들에게 혼란의 시대 속에서 성경적 정의는 어떻게 이야기 있을지 이야기의 서두를 비로소 꺼낼 있을 것이다


 2. 연구의 범위와 방법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사상이 출현했을 당시의 유럽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이후에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스웨덴만의 독특한 사회민주주의로 발전하게 원인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정의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떠한 평가를 내릴 있을지 살펴보고 최근 들어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도전들과 한계를 살펴볼 것이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러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복지 정책 한국 사회에 비교하고 적용할 점은 없는지와 기독교적 입장에서 우리가 취할 있는 가지 과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발전


 1. 18-19c 유럽 상황


  1) 초기 자본주의의 한계

    상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이 결정되는 자본주의는 18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시장은 보다 넓은 사회 구조 속에 있었고 정치에 종속된 형태였다. 이러한 시장은 18-19세를 넘어서면서 산업혁명과 함께 새로운 자본주의 형태로 급속하게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진적 발전은 다른 아이러니를 만들어 냈다. 뮬러는 이것을 “18세기 산업 혁명의 핵심에는 생산 도구들의 기적적인 발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인간 공동체 조직의 파국적 뿌리 뽑힘을 동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당시 대중들의 사회적 문제와 차별을 해결해 것이라고 여겼으나 오히려 개인의 소유를 강조하고 공공선이 약화된 나머지 공공의 이익은 등한시 되고 사람들은 수단화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1920년대와 1930년대 경제적 붕괴와 사회적 대혼란을 겪으면서 강도가 더욱 거세졌고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요구했고 국가나 공동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다시금 요청하고 있었다.

    홉하우스는 이러한 19세기의 상황에 대하여 “19세기는 자유주의의 시대라고 불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19세기의 종언과 함께 위대한 운동의 운명이 밑바닥에 다다랐음을 보게 된다 평하였다.


  2) 마르크스주의

    이러한 자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마르크스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2인터네셔날 시기(1989-1914)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의 지배 교리로 정착하였다

    사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카우츠키에 의해서 이론이 발전되었다고 있다. 사람은 마르크스주의를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단순화 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결정론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경제유물론 중심적이며 계급 투쟁은 불가피하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개념을 고안해 것이다

    경제적 힘을 중요시했다는 의미는 역사 자체가 흘러가는 중요한 사상을 정치가 아닌 경제로 보았고 이러한 경제적 힘을 가진 계급과 권리를 쟁취하려는 -브루주아 계층 간의 투쟁의 과정이 역사라고 정의하였다. 당시 지배 사상이었던 자본주의는 결국 경제적 힘들 간의 긴장으로 인하여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계급 간의 투쟁이 불가피하게 되며 결국 자본주의는 붕괴되고 이후에 사회주의가 도래하게 것이라는 낙관론적인 유물론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경제론 중심적이고 계급 투쟁적 마르크스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자들과 같이 국가의 역할이나 정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했다. 엥겔스는 그의 책에서 혁명은의도적이거나 예측할 없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그것은 개별 정당들이나 전체 계급들의 의지와 리더십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조건들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예측했던 20세기를 넘어서며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붕괴될 것이라는 희망적 예언은 빗나가게 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러 도전을 맞게 된다. 소멸되거나 붕괴될 알았던 자본주의는 오히려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세력을 키워가게 되었다. 사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먼저 자본주의가 붕괴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수동적 특성 많이 있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변화와 개혁은 원했던 대중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킬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수정된 사회주의나 민족주의를 표방한 공동체주의가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사로잡게 되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따라서 수정이 필요할 밖에 없었다. 조르주 소렐이 이끄는 파시즘의 근간이 되는 혁명적 수정주의와 다른 갈래인 민주적 수정주의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3) 수정주의

    시기 프랑스 내에서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수정된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임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포기하는 수정주의와의 긴장관계는 지속 되었고 독일 또한 베른슈타인의 폭넓은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과 계급 투쟁론을 비판하여 민주주의를 이상 붕괴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 아닌 협력하여 새로운 모델로 바라봐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전환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 수정주의이다. 이들은 지배계층과의 공생적 관계를 모색함으로 현재 국가가 안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였다. 정도와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민주적 수정주의를 따르기 시작했다.

    레닌은 위의 민주적 수정주의 태도와 달리 소수 지배 엘리트 계층의 의식화를 통하여 혁명을 이루어 있다는 소위혁명적 수정주의 주창하였다. 그의 주장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것이 있다면 레닌은 자본주의가 붕괴되도록 수동적으로 기다린 것이 아닌 의식화 작업을 통하여 때로는 정치적 군사적 세력을 이용하여 역사적 유물론을 대체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4) 사회민주주의

    이러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1 세계 대전이 끝나는 즈음에 거의 완성이 되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주장하는 기둥인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 이론은 자리가 없었다. 경제적 대공황 앞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대중들에게 경제적인 힘에 굴복하라는 말은 오히려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었고 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다시 살리는 것은 정치적 지배계층과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보수가 아닌 완전한 교체 사상이 필요한 시기였고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고자 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 공동체적이며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조하는 사회 민주주의가 탄생하게 것이다. 그러나 초기 사회 민주주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고 있는 보수적 측면과 정치 세력과 공조하고자 하는 수정주의적 태도 속에서 예매 모호한 입장을 취하였다. 1 세계 대전 이후로 국가는 사회당이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연대를 형성하게 사회적 영향력을 펼쳐주길 원했으나 보수파와 수정주의파 간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고 내부 갈등만 유지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5) 파시스트 우파로의 전향

    사람들은 이제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주의와 수동성에도 좌절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적 질서에도 염증을 느꼈다. 조금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자본주의를 통제하면서 공동체주의에 호소하는 그룹에 매력을 느꼈다. 수정주의적 좌파에서 파시스트적 우파로의 전향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수정주의적 좌파나 우파는 유사점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 주의를 지향했고 비마르크스적인 사회주의가 필요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자본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닌 통제된 자본주의인3 추구하면서 동시에국민, 민족, 공동체 강조점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러한 상황 속의 전형적인 우파적 성향의 인물이라고 있다.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는 히틀러에 의해 파시스트적 우파 분위기 속에서 세력을 확장시킬 있었던 것이다.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그들을 환영했던 이유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정당에 매력을 느꼈다고 있을 것이다.


 2.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앞에서 지난 18-19세기 유럽을 지배했던 다양한 사상들과 특징들에 대하여 요약적으로 서술하였다. 초기 자본주의를 통하여 이상이 실현될 알았으나 오히려 개인의 이익에 집착한 나머지 계층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겪으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했다. 정통적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급부상하였으나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간의 투쟁을 통한 예측은 모두 빗나가 버렸다. 자본주의는 더욱 확대되었고 전쟁으로 인하여 경제적 힘이 아닌 국가의 정치력이 더욱 중요하게 것이다. 이후 정통적 마르크스주의를 수정한 민주적 수정주의와 엘리트 계층에 의한 정치적, 군사적 힘을 이용한 의식화 작업을 강조한 혁명적 수정주의가 등장하였었고 이러한 과도기를 지나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여전히 기존의 마르크스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의 갈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이 내지 못하였고 사이를 폭력도 불사하는 적극적 파시스트적 우파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대부부의 유럽이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경험하였으나 유독 당시 스웨덴의 변화는 달랐다. 그들의 변화가 다른 유럽 국가와 달랐던 이유와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고자 한다

  

  1) 스웨덴의 민주적 수정주의

     스웨덴 사민당은 초기 35년간은 얄마르 바른팅(Hjalmar Branting) 이끌었는데 그는 원래 자유주의 그룹의 사람이었다. 덕분에 긍정적이고 폭넓게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변형하는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유연하고 비교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였기 때문에 2인터네셔널 이후 더욱 강화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투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들의 정책을 펼쳐갈 있었다. 국가적 필요로 인해 정책을 수정할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스웨덴의 정치적 상황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서 구시대적이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낙후된 정치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비사회주의 정당들과도 연합하고 연대하여 선거권 개혁을 이루어냈다. 자연스럽게 비사민당과의 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주의가 단순히 경제적 발전으로부터 출현한 것이 아닌 국가적 상황에 따라 때로는 정치적 권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사회 민주 정당들과의 연합은 결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수하는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의 기둥을 제거한 전형적인 민주적 수정주의의 절차였던 것이다.


  2) 전간기의 도전들

    1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수정주의가 등장하자 1904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 대회에서는 민주주의와 정부와 연합하는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미 민주적 수정주의의 길을 걷고 있었던 스웨덴은 확고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었다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은 높은 실업률과 파업, 공당폐쇄 등의 불안정한 시기를 겪으면서 더욱더 민주적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높아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정부주도의 통제된 자본주의 도입을 요청하게 것이다


  3)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

    1928 사민당 의장직을 맡게 페르 알빈 한손은국민의 가정’(folkhemmet)이라는 개념으로 사민당의 미래적 비전을 확고히 한사람이다


    “가정이란 근본적으로 공동체, 그리고 함께함(togetherness) 뜻합니다. 훌륭한 가정은 어떤 구성원도 특별대우를 하거나 천대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홀대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가정에는 평등, 사려 깊음, 협력, 도움이 존재합니다. 이를 국민과 시민의 위대한 가정이라는 개념에 적용할 경우, 이는 오늘날의 시민들을 특권을 가진 자와 천대받는 자로, 지배자와 종속자로, 부자와 빈자로, 자산 소유자와 빈털터리로, 약탈자와 약탈당한 자로 갈라놓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장벽의 철폐를 의미할 것입니다. 스웨덴 사회는 아직 국민의 가정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평등, 정치적 권리의 평등은 존재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계급사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경제적 관점에서 소수의 독재가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정주의적 좌파그룹이 국가적 정책에 소극적이며 개인의 이익과 타협한 나머지 공동체주의적 관점이 약화되었다는 비판에 대하여 한손은국민의 가정이라는 개념으로 민주적 수정주의에 민족주의적 관점을 첨가한 것이다


  4) ‘3

    정치적 연대와 통합을 이룬 자연스레 대중들의 관심은 경제적 문제로 집중되었다. 어떻게 불황을 극복할 것인가는 사민당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도 실제적인 질문이었다

    1932년부터 1949 까지 재정부 장관직을 맡았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 경제침체 위기가 단순한 실업률의 문제가 아닌 사회체제 전체의 악순환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을 맡아 제공하게 되면 선순환이 일어나게 되어 경제를 살릴 있다는 주장을 하였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나치가 이러한 케인스주의적 노선 전환을 시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3. 발전의 궤적

    2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가 자생적 힘으로 시장을 지배할 있다는 신념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이익의 보호와 경제력 증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스웨덴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적극적으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예를 들어-메이드네르(Rehn-Meidner)’ 모델은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회사의 종류와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는 노동자간의 평등한 임금구조를 유지하며 동시에 기업들 간의 성장에 촉매제로 활용될 있는 방식이다. 이처럼 전후 시대에 스웨덴은 폭넓은 계급연대와 사회 민주주의적 합의를 계속해서 추구해가는 방식을 취하였다.


.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실제


    앞의 글에서는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가 탄생했던 18-19세기 그리고 세계대전 전후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국민들이 원했던 사회민주주의의 필요와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장에서는 짧게나마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시스템을 보여줄 있는 가지 실제적인 예들을 통하여 스웨덴의 독특한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의 특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1. 노동조합

    사회민주주의의 틀을 마련하고 시스템이 지속될 있도록 사회민주당이 70여년의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이유 하나는 바로 노동조합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노동자의 80% 전국단위의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투표권자의 과반수 이상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이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관심이 많은 사민당의 전폭적인 지원자들이었다. 물론 중간 중간마다 집권당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으나 새로운 집권당 또한 이러한 전국 규모의 노동조합의 의견을 간과할 없는 모습이다

    스웨덴은 3개의 전국단위의 노동조합연행이 있다. 첫째는 생산직노동자(blue-collar workers)들이 모인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LO)이다. 2007 현재 스웨덴 전체 400 노동자 중에 183 명이 조합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생산직 노동자의 82% 여기에 속해 있다. 번째는 사무직 노동자(white-collar workers) 단체인 스웨덴사무직 노동조합총연맹(Swedish Confederation of Professional Employees: TCO)이다. 130 명의 조합원이 있으며 사무직의 75%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번째는 전문직노동자(academics) 스웨덴전문직노동조합총연맹(Swedish Confederation of Professional Associations : SACO)이다. 50 명의 조합원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전국규모의 노동조합이 가능한 이유는 전국단위 조합이 임금협상을 벌이기 때문에 정규직, 비정규직, 대기업, 중소기 업간의 임금 격차를 줄일 있고 따라서 열악한 조건에 있는 다수의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또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조합 운영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게 되었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힘을 실어주고자 하기 때문에 높은 가입률을 유지할 있게 되었다.


 2. 사회복지제도

    스웨덴 복지제도는 먼저 보편적 복지제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별, 연령, 장애정도, 사회보험 기여금 납부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무료로 보건·복지 서비스를 받을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재원은 조세가 39.8% 이고 나머지는 사회보장기여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보장기여금의 경우 근로자는 근로소득의 7%, 고용보험의 경우 근로소득의 0.53% 지불되면 나머지는 고용주가 부담하는 부분이다

    스웨덴 복지제도의 특징 다른 가지는 서비스 제공기관 시설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비스 이용 가격에 대한 부분은 국가가 부담하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를 따름과 동시에 서비스 제공 기관에 대해서는 경쟁을 통한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웨덴 복지제도는 체계화된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다. 소득보장급여 제공기관, 보건·복지 서비스 제공기관, 고용보험 업무 제공기관의 3 기관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복지제도는 이러한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한 제공자와 수요자들의 높은 도덕성과 정직성, 성실성, 신뢰성이 바탕이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보건 서비스

    스웨덴의 보건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공의료가 주를 이루는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방식으로 제공된다. 대상자는 스웨덴 거주자로서 세무서에 신고를 거주번호가 있는 모두에게 해당된다

    1 진료소에 담당 주치의가 있고 응급환자를 제외한 경우에는 1 담당 주치의를 통하여 2 진료소로 가게 된다. 1 진료 1 19,000 정도의 진료비를 내며 1 동안 약제비를 포함하여 최대 2,700크로나( 370,000) 환자가 내는 최대 부담금이며 나머지는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치과진료의 경우 19 이하는 무료로 치과진료가 가능하다. 의치의 경우 3개까지는 본인 부담 이후에는 광역단체가 보조비를 지원한다. 20세부터는 본인이 대부분 부담하고 광역단체가 일부 부담하게 되어있다


 4. 복지 서비스

    소득보장은 독립기관인 사회보장청이, 의료서비스는 광역자치단체(), 복지서비스는 기초자치단체(꼬뮌) 담당하고 있다. 국가가 아픈 사람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득보장 뿐만 아니라 치료와 일상생활 전반에 서비스가 필요한데 이를 통칭하여 복지 서비스라 부를 있을 것이다


  1) 아동복지 서비스

    출산급여는 아동이 8세에 도달할 때까지 아동 1명당 480일의 유급휴가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390일까지는 월급의 80% 지급하며 나머지 90일은 일당 180크로나(24,300) 지급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다섯 있는 어머니는 7 6개월의 유급휴가를 있으며 이는 아버지도 사용할 있는 제도이다

    아동수당은 16 미만 아동이 있는 모든 부모에게 아동 일인당 매월 1,050크로나(141,750) 지급받고 아이가 많으면 많은 수당 율이 붙게 된다.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아동수가 아무리 많아도 2,520크로나(340,200) 넘지 않게 되어 있다. 나머지는 기초자치단체가 납부하게 되며 여기에는 주간 보육 유치원 교육,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방과 보호 학습지도, 점심 간식이 포함된다.


  2) 장애인복지 서비스

    19 이하 장애아동의 경우 장애정도가 100% 경우 8,396크로나(1,133,460) 지급되며 이하 차등 지급된다. 또한 20시간의 생활도우미 서비스를 기초자치단체가 지불하며 이후의 초과시간에 대해서는 사회 보장청이 지불한다.


  3) 노인복지 서비스

    65 이상의 경우 세금을 제하고 최대 12,800크로나(1,728,000)정도를 받게 되며 가정주부와 같이 직업이 없었던 경우에도 일인당 7,153크로나(965,655) 받게 된다.


  4) 주택정책

    스특홀름특별구의 2007 주택유형 비중에 관한 표이다.

   

    임대 주택이 51%정도이며 사립 주택의 비율은 49%정도이다. 또한 생활이 어려운 경우 주택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5. 노동시장정책


  1) 실업급여

    실업급여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실직 1 이상 실업 보험금고에 가입하여 일정 요건 이상을 충족한 사람의 경우 급여의 80%선에서 300일을 지급하며 연장도 가능하다. 하루 최대 680크로나(91,800) 받을 있다. 만약 실업 보험금고에 1 미만이아 자격미달의 경우에는 기초실업급여로 하루 320크로나(43,200) 받을 있다.


  2)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고용사무소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관련하여 구직 활동지원, 구직활동 향상시켜 주기, 고용상담, 직업훈련, 창업지원, 본인의 업무능력 명료화해 주기, 본인의 근로상황에 적응 하도록하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고용주들에게는 신규직원모집, 직원모집을 위한 사전훈련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다


. 평가


 1. 정의론에 근거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정책 평가

    18세기에 등장하여 19세기-20세기 초까지 가장 영향력을 끼친 초기 자본주의는 철저히 밀과 벤담의공리주의 입장을 따르고 있었다. 선이 획득되는 개인의 권리나 요구는 무시될  수도 있다는최고의 행복 대한 논리이다. 또한 1970년대에 등장한 로버트 노직의 완전자유주의의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원리 의해 시장이 자율성을 가지고 활동할 있도록 최소국가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초기 자본주의의 한계와 경제공황을 경험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느꼈고 스웨덴 또한 독특한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스웨덴의 복지 체계의 특징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보편적이고 평등한 복지정책이 특징이다. 최대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당할 없다는 논리이다. 또한 평등의 부분에서 소수가 불평등을 겪게 경우 롤즈가 주장한 바와 같이 격차의 원리를 통하여 최소를 극대화 하는 소위맥시민(maximin)’ 전략을 취하고 있다. 롤즈의 정의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평등은 강조하지만 평등 또한 자유에 근거한 분배적 정의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단순히 국가 주도하에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주의가 아닌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국민들에게 최대의 수혜가 돌아갈 있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롤즈의 전형적인 정의론의 사례라고 있을 것이다. 조세와 사회복지 기여금의 상당부분은 고소득층과 고용주가 내게 하는 누진세 적용에 대하여 로직은 다른 불평등한 강요된 노동이라고 비판 했었을 것이다.

    1970년대를 넘어서면서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는 적극적인 분배적 정의를 실현한 나머지 국가의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였고3 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통하여 누진세 완화와 사회복지 혜택의 축소를 단행했다. 지나친 조세부과는 결국 노동성의 하락을 가져온다는 비판과 함께 경기 침체 그리고 물가 상승이 병행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3 길은 실패로 끝나고 결국 스웨덴도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된 롤즈식 정의론이 다시 한번 노직의 완전자유주의와 갈등을 겪게 것이다. 결국 국가의 복지정책이 경제 안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약점인 분배의 정의에 대한 부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시도와 성과들은 분명 돌이켜 봐야 부분이라고 장하성 교수는 말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형성 초기에 공동체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한스의국민의 슬로건은 단순한 민주적 수정주의를 넘어서 국민이 하나로 뭉칠 있는 공동체의 강조한 것이다. 당시 사민당이 국가와 깊게 결탁한다는 비판을 피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선을 위한 목적으로국민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이클 샌델이 말하고 있는공동체주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있다. 샌델은 우리가 롤즈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적 의무와 쌍방의 합의에 따른 의무만을 준수한다고 했을 연대와 충직의 의무,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연대의무 놓칠 있다고 비판한다. 매킨타이어가 말한 서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당연히 행해야 의무가 있다는 공동체주의적 입장을 전개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샌델은 정의란 결국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발전해가야 한다는 것이다. 빈부의 격차 문제 또한 이것은 단순한 공리의 증대나 합의에 의한 재분배를 넘어선 연대의식의 약화를 가져올 있다고 샌델은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를 해방신학적 정의론에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까? 얼핏 보면 스웨덴 초기 사회민주주의 형성 시기 ,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가나 지배계층에 대항하여 소외계층을 옹호하려는 시도는 사회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웨덴이 취한 민주적 수정주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말하고 있는계급적 투쟁 단계를 넘어선 비마르크스적 접근이다. 따라서 계급투쟁과 해방의 모토를 가지고 있는 해방신학의 정의론이 말하는정의와는 사뭇 관점이 다르다고 평가할 있을 것이다.


 2. 신자유주의의 도전

    김재훈 교수는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사민주의는 베른슈타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자유주의와 관련성이 반면에 신자유주의와는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념을 정의하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뒤메닐(Gérard Duménil) 레비(Dominique Lévy) 금융이 헤게모니를 지닌 국면이라고 보았고 셰네(François Chesnais) 신자유주의를 금융의 지배가 세계화된 축적 구조라고 보았다. 혹은 세계화, 신제국죽의, 신보수주의 세자기 얼굴의 신판 자본주의로 보는 관점도 있다. 혹자는 국가가 모든 산업정책과 규제를 철폐해서 시장에 기능에 맡기고 민영화하는 재구조화 정책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세계경제의 금융화는 신자유주의를 논할 중요한 이슈이며 실제로 지구적 규모의 자금이동의 규모가 점차로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IMF, IBRD, OECD등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하여 국가 간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잦아지기도 하였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케이슨주의적 복지국가체제의 부정이라는 점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프리드먼(Militon Friedman) 하이에크(Hayek)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론의 선구자라고 있다. 프리드먼은 지속적으로 케인스 경제학을 비판하였으며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비판하며 이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라고 공격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출현은 냉전 시대 이후 노동시장의 성장으로 지속적인 자본의 이윤이 위축되어 경제위가가 초대되었다고 보는 견해, 1970년대 석유파동 등으로 경기 침체가 만성화 되는 케인스 경제학의 무능함이 드러났다는 견해 그리고 대량생산-대량소비체제가 결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대시키고 산업구조를 재편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신자유주의는 결국 국가의 경제 개입을 줄이고자 한다. 내부적으로는 복지국가의 축소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잔본의 세계화와 금융의 지배체제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복지국가 또한 나라의 경제적 변화 안에서 종속적으로 움직일 밖에 없음을 김재훈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자신의 책에서 현시대를 미국이 주도하는시장 민주주의’, 미국의 이익과 대치되며 세계화 움직임을 보이는시장사회’, 이에 반하여 과거로 회귀하려는도덕적 전체주의그리고민주주의 싸움이라고 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가 나아갈 길은무상제공’, ‘지식’, ‘책임성’, ‘의미부여라는 핵심적 키워드로 말하고 있다. 상업적 목적을 떠나봉사하고 관대성을 요구하는 고차원의인간의 사회민주주의가 나가야 방향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사회정책은 비용이 아니라 생산적인 투자라고 스웨덴 사민주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 말했다. 1932 사민당이 스웨덴을 집권한 이후 이러한 뮈르달의 개념은 복지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정책을 비용을 보는 시각으로 전환을 겪으며 스웨덴은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의 갈등을 겪게 되었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무엇보다 중장 집중적 교섭체계가 분산화 되었다. ‘연대와 평등에서시장과 다양성으로 슬로건이 바뀌고, 국가 수준의 조합주의는 폐기되고 낮은 수준의 조합주는 유지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래 사회 지출비 증가 속도의 완화, 자격 요견 강화, 긴축재정, 복지 프로그램의 전목 혹은 부분 수정, 시장 의존적 정책 도입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3. 한국 사회 적용점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는 현재의 한국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장하성 교수는 북유럽식 사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결국 공정한 자본주의의 회복을 통한 고쳐쓰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공정한 절차의 자본주의가 사회 민주주의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 보다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불평등한 부분에 있어서 때로는 자유가 침해되는 한이 있더라도 적극적 개입을 통하여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필요해 보인다

    윤상우 교수는 한국의 복지정책은 여전히잔여적성격에 매몰되어 있고 여전히 개발독재의 유산과 신자유주의의 압박으로 인한 매우 소득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박승희 교수는 그의 『한국 사회보장론-스웨덴을 거울삼아』를 통하여 스웨덴의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분석하고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적용타당성에 대하여 분석하는 글을 썼다. 그는 또한 다른 책에서 노동조합에 대하여 언급하며 한국 사회의 적용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한국 노동조합의 경우 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노총) 대기업 위주로 운영되고 대기업,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가 심하여, 비정규직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 노동조합의 현실에 도전을 준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노종조합 집행부 구성의 민주화와 조합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전용덕 교수는 이와는 반대로 스웨덴과 덴마크의 복지정책을 실패로 간주하면서 국가의 재정적 부감이 매우 크며 한국적 상황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는 한국 복지제도 개혁을 위해서 자본주의의 부정적 편견을 깨고 오히려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간섭주의와 사회주의의 단점과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평가하고 있다.

    장하성 교수 또한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의 형태에 불과하며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는유럽식 자본주의 형태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협동조합의 경우 협력과 연대라는 장점은 있으나 국가적 단위에서 이러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4. 기독교적 평가와 적용 가능성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간략한 내용 소개와 정의론에 입각한 평가와 한국 사회의 적용점에 대하여 짧게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기독교적 입장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있을지에 대한 가지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9세기 20세기 자본주의의 약점과 한계로 지적되었던 빈부의 격차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오히려 개인이 도구화 되어가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반복되고 있다. 지구화를 통화여 이러한 금융 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더욱 강력하고 빠른 속도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비록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또한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자본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할 수는 없으나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아이들과 장애인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활 그리고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공동체 정신에 입각하여 희생하고 배려하는 정신은 흡사 성경 특별히 구약이 보여주고자 하는 보편적 정의론에 가깝다고 있을 것이다. 자카 아탈리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인간의 숭고한 가치른 내세운인간의 제시하였다면 기독교는 물질주의화 되어가고 세계적적으로 인간이 도구화 되는 현상 속에서 성경이 말하는 보편적 정의론을 고수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시대를 냉철한 눈으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노력과 연구 또한 필요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이 그러하듯이 이제는 단순히 한국 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바라볼 있는 사상적 감수성이 필요할 것이다

    단순한 학문적 이론적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죄성으로 인하여 혹은 제도로 인하여 사회적 약자들이 불평들을 겪고 그냥 묵살되지 않도록 함께 연대하며 함께 서주는 공동체의 역할을 감당해야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의 영향을 받아 복지 체계가 변화했던 스웨덴의 사회 민주주의를 보며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이러한 거대한 자본의 흐름 속에서 고유의 가치를 지켜낼 있을 것인가라는 쉽지 않으나 그러나 계속해서 고민해야 삶의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야 것이다


. 결론

    19세기 말의 상황과 지금을 비교했을 물론 기술발달이나 국제적인 물류 혹은 금융의 이동은 비교 없을 만큼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정의론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여전히자유평등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연장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현재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소위완전자유주의 입장이 우세하다고 말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의 시대 속에서 완전고용과 보편적 평등을 이루기 위한 스웨덴의 1세기에 걸친 사회 민주주의적 노력을 돌아보면서 제도라는 미명하에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일들을 소홀히 보지 않고 어떠한 적극적인 행동들을 취할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된다.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교 공동체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어떠한 연구과 실천적 노력들이 병행되어야 할지 스웨덴 사회 민주주의를 통하여 많은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되었다


. 참고문헌


김재훈. 『사민주의 복지국가와 사회적 경제』. 서울: 한울, 2013.

박승희 3. 『스웨덴 사회복지의 실제』. 서울: 양서원, 2007.

박승희. 『한국 사회보장론』. 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2.

윤상우. “민주화 이후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평가”, 『한국 민주화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동학』. 서울: 한울, 2009.

장하성. 『한국 자본주의』. 서울: 헤이북스, 2014.

전용덕. 『복지국가의 미래-덴마크와 스웨덴의 고민』. 서울: 북코리아, 2014.


Andersson, Jenny. Between Growth and Security. 박형준 . 『경제성장과 사회보장 사이에서』. 서울: 책세상, 2006.

Attali, Jacques. La Voie Humaine. 주세열 . 『인간의 길』. 서울: 에디터, 2006.

Berman, Sheri.  The primacy of politics. 김유진 . 『정치가 우선한다』. 서울: 하마니타스, 2010.

Lebacqz, Karen.  Six Theories of Justice. 이유선 . 『정의에 대한 6가지 철학적 논쟁』. 서울: 간디서원, 2006.

Sandel, Michael J. Justice. 이창신 . 『정의란 무엇인가』. 서울: 김영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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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통계청 조사발표에 따른 몇가지 생각들


황인성


먼저 이 글은 학문적 글쓰기가 아닌 2015년 통계발표에 따른 대략적 분석임을 밝혀둔다.

현상에 대한 일차적인 해석일 뿐이지 변화원인에 대한 분석은 지속적인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0. 몇가지 고려사항

-통계청에서는 매 10년마다 총인구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인구조사를 실시하는데 종교부분에 있어서는 통상 전수조사(직접 숫자를 계수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2015년 분석에서는 표본조사(총인구 중 20%의 표본을 토대로 대략적 전체 숫자를 추산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적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단순히 기독교 인구의 증감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한국 내 전체적인 인구변화추이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요즈음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많이 줄어서 반 내 학생수와 반 자체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든다고 경각심을 갖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세대별 인구 감소 대비 기독교 인구 감소는 어떤 추이를 나타내는지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조사 응시자들이 설문지에서 '기독교'를 체크할 때 그 '기독교'의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가 2013년에 작성한 영국의 세속화에 대한 논문 중 유럽의 예를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응시자들은 '기독교'를 체크할 때 천주교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 유사 종교가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속사회에서의 기독교적 대응과 평가_황인성 중 유럽 상황부분 발췌.pdf


-이번 2015년 통계조사 결과 이전까지의 기독교 인구 변화 특별히 청년세대와 관계된 분석은 필자가 2015년에 쓴 논문의 통계부분을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한국 ‘청년교회’ 대안공동체 만들기_황인성 중 청년이탈 현상 부분 발췌.pdf


-이번 글은 주어진 통계자료에 의한 분석일 뿐이다.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을 위함이 아니다. 그러나 10, 20대의 기독교 인구의 현격한 감소와 무종교 인구의 증가에 대해서 주지하며 동시에 소위 '기독교인구'에 속하는 사람들의 실제적 신앙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1. 전체인구변화

-한국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은 매우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문제분석과 전망은 이미 수많은 책들을 통하여 경고받고 있다. 


표1) 1985-2015 세대별 전체인구, 종교인구 및 기독교인구 비교



그림1) 1985-2015 세대별 전체인구 변화 추이



-전체적인 인구수는 늘어나고 있으나 그림1)에서 보는 바와같이 한국사회는 점차 고령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1985년 조사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10대들이 1995년에는 20대로 2005년에는 30대로 2015년에는 40대에서 정점을 찍는 것을 볼 수 있다. 


2. 세대별 인구변화


표2) 1985-2015 세대별 전체인구, 종교인구 및 기독교인구 증감율


-10대, 20대의 전체인구가 10%대의 지속적인 감소를 보이고 있고 최근들어서는 30대 또한 인구감소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대별 종교인구에서는 10대에서 40대까지 전체인구보다 빠른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그중 20대의 경우에는 2005년 대비 42%의 감소를 보이고 있다. 

-세대별 기독교인구는 뚜렷한 종교인구의 감소나 전체인구의 감소에 비해 그 감소폭이 크지는 않으나 동일한 감소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2) 1985-2015 세대별 기독교 인구수 변화



- 그림2)에서 볼 수 있듯이 1995년에는 10대-30대까지의 기독교 인구가 높은 비율을 차지 했으나 2015년 조사 결과 기독교 인구의 상당수는 40-50대를 중심으로한 고령화된 기독교 인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감소폭은 사실 종교인구 감소나 전체인구 감소 비율에 비해 둔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부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3. 1985-2015 종교인구와 무종교인구 변화


표3) 1985-2015 종교인구 및 비종교 인구 변화



그림3) 1985-2015 종교인구 및 비종교 인구 변화 비교



-한국사회는 이제 종교를 가진 사람(43.94%)보다 종교가 없는 사람(56.06%)이 더 많은 사회가 되었다. 이 부분은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기독교 이탈현상을 기독교 내부의 문제에 기인한 감소현상을 볼 것인지 아니면 '부유한 국가일수록' 종교인구가 감소하는 일반적 사회현상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입장차이가 생겨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4) 1985-2015 종교별 인구 변화 비교



-2005년 통계에서 이미 기독교 인구 감소현상과 이와 대비하여 천주교 인구의 급격한 성장으로 많은 책과 논문들은 2015년 통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의외를 결과가 나타났다. (사실 최근 한국 교회의 문제점과 치부들이 연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 인구의 증가는 개인적으로 더 큰 문제라고 여겨진다. 통계가 문제던지, 교회가 문제던지...)


-기독교 인구는 종교인구수는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율이나 실제 인구수가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림2)에서 보는바와 같이 10-30대의 기독교 인구수는 감소 하였고 다만 40대 이후의 기독교 인구수 증가가 그 감소분을 상회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4. 정리되지 않은 남겨진 질문들


-기독교 인구 실측조사는 어떠한 점에서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가?


-이원규 교수가 UN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삶의 질이 나아질 수록 종교인구가 감소한다'는 기존의 세속화 테제는 한국적 사회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기독교 인구 변화에 대한 관심과 분석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기독교'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과연 정량화 될 수 있을까? 


-인구 감소에 따른 특별히 30대 이하의 급격한 인구 감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떠한 대처를 하고 있는가?

(20,30년전 주일학교 부흥의 향수에 젖어 지금도 수많은 신참 사역자들의 열정과 능력을 폄하하고 있지는 않을까?)


-급격한 종교인구의 감소 속에서 기독교가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주교의 감소는 의외의 결과로 보인다. 


-'지상 대명령'에 근거한 선교패러다임이 지속하는 한 과연 교회의 외적 성장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도래'는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는가? 집단개종과 소수 제자사역을 통한 질적 성장의 고민...


이상 본의 아니게 '가나안' 목사의 삶을 살고 있는 한 그리스도인의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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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년교회대안공동체만들기_소논문.pdf

황인성

Ⅰ. 서론


‘한국 교회 위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단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을 거쳐 생겨난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본질과 관계된 것이다. 교회적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위기 극복의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한국 교회 내 청년 세대에 집중함으로써 어떠한 특수한 상황이 있으며 이에 따른 대안들은 무엇인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이 논지를 전개하기 위하여 먼저 한국 교회 위기진단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서 최근 에큐메니컬 진영과 로잔 진영 그리고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는 ‘세상과 교회’의 관계설정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위의 세 가지 운동에서 강조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근간으로 한국 교회가 처해있는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 교회의 현황을 분석하기 위하여 다양한 기관들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원인들을 찾아보고 그 대안점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한 가지 예로서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를 사례로 들고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평가 내려 보고자 한다. 


Ⅱ.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교회


1927년 첫 신앙과 직제 선교대회를 시작으로 발전한 ‘신앙과 직제’운동은 2차 신앙과 직제 대회를 거치면서 조금 더 기독론 중심의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1960년대 이후에는 동방정교회와 오순절 교회의 WCC 가입 그리고 제2차 바티칸 대회의 영향으로 인하여 ‘교회의 보편성’과 교회들의 가시적 일치에 집중하였다. 1990년대 이후 신앙과 직제 운동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서 먼저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교회론에서 삼위일체적 교회론, 특별히 성령을 강조한 삼위일체적 교회론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으며 둘째로 ’코이노니아의 개념‘이 도입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세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말론적 개념이 발전하게 되었다. 

 로잔운동은 WCC에 대한 반대급부로 시작한 연유로 WCC와는 달리 ‘전도의 우선성’과 ‘개인영혼구원’을 우선시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석되거나 사라져가고 있고 오히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 구원과 전도에 대한 강조점은 여전히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로잔운동에 나타난 교회론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초기에는 ‘전도의 수위성’을 바탕으로 ‘사회 참여’에 대한 언급은 있었으나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WCC의 사회참여에 자극을 받고 또한 존 스토트나 르네 빠딜라와 같은 개혁적 신학자들에 의하여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하게 되었고 결국 2010년 케이프타운선언문에는 WCC가 강조하는 사회참여의 관점과 거의 구분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와 코이노니아를 강조하는 WCC의 교회론적 특성과 여전히 기독론 중심의 교회론을 가지고 있는 로잔진영의 차이는 존재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 레슬리 뉴비긴의 영향을 받아 북미의 신학자들이 GOCN(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을 형성하여 북미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교회가 선교에 관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혁신적 전환이 필요했다. 이러한 논의를 발전시키기의 위하여 선교적 교회론은 에큐메니칼의 주요 개념인 ‘하나님의 선교’를 도입하였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선교의 무대인 ‘세상’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앞의 세 가지 운동의 최근 연구경향들은 물론 각 운동과 상황에 따라 그 강조하는 점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몇 가지의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합의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첫째로 교회는 지역교회로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지역적 상황을 고려한 상황적인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며 둘째로 이러한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시대적 요구와 특수성 속에서 교회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중요한 교회의 본질이 있다는 것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이를 ‘상대성’과 ‘보편성’의 원리로 표현하였고 스티븐 B. 베반스(Stephen B. Bevans)와 로저 P. 슈레더(Roger P. Schroeder)는 그들의 책에서 변화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에큐메니칼 진영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나고 있는 세계기독교 지형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특별히 남반구의 신학과 동방정교의 신학을 반영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경세적 삼위일체를 통한 코이노니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최근에는 환경문제와 결부된 정의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로잔진영은 생성 초기에는 ‘개인 구원’과 ‘복음의 수위성’에 우선순위를 두었지만 시대적 요청과 에큐메니컬 진영과의 활발한 대화 그리고 로잔 진영 내 존 스토트, 르네 빠딜라,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같은 개혁자들을 노력을 통하여 사회참여와 시대적 요청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유지하면서 세상과의 적절한 대화적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은 특별히 북미 상황이 가지고 있는 교단주의적 특성 속에서 어떻게 지역교회가 활발히 세상과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Ⅲ. 한국 교회 청년 이탈현상


한국 내 기독교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통계청은 매 5년마다 전수조사를 통한 다양한 인구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갤럽에서는 표본조사를 통하여 종교관련 통계조사를 실시하였다. 2012년에 ‘한국 교회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은 (주)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하여 종교와 관련한 자세한 통계자료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통계 자료를 통한 기독교의 현재상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인구는 50%을 상회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0년을 넘어서면서 감소하는 추세가 되었다. 종교별로 보았을 때 불교의 인구수가 가장 많았으나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하면서 20% 초반 대에서 기독교 인구수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는 점차적으로 성장해왔으나 성장 증가율이 눈에 띄게 둔화 되었고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이미 감소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천주교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답보상태를 나타내고 있고 나머지 자료에서는 빠른 증가율로 인한 성장이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 통계에서는 10%정도의 종교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셋째로 세대별로는 전체 종교인구 자체가 고령화 되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의 경우 20대의 이탈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으며 60대 이상의 기독교 인구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외부적 변화와 더불어 교회 내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수평이동 현상이다. 이원규는 이러한 수평이동 현상에 대하여 교회가 이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성도들은 시장경제와 같이 여러 교회에서 소비자 입장으로 자신에게 맞는 교회를 취사선택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수평이동은 결국 교인들을 데려가려는 과잉 경쟁과 혹은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결국 자연스럽게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역자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대형교회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라는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 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신앙의 약화’ 현상이라는 점이다. 개념적으로 서술하면 이것은 초월적 실재에 대한 의식의 약화라고도 볼 수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교회 출석이나 성경읽기, 기도생활 등의 기본적인 종교관습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양적 질적 쇠퇴의 한 가지 현상으로 소위 ‘가나안 성도’ 현상을 들 수 있다. 양희송은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에 대하여 목회자에 대하여는 ‘성직주의’가 교회에 대해서는 ‘성장주의’가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결합한 ‘승리주의’의 사고가 기성 교회에 팽배해 있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젊은 세대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저항을 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이후의 책에서는 조금 더 현상을 풀어서 분석하고 있다. 양희송은 가나안 성도들이 권력 남용과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숨막힘’을 경험하거나 목회자나 교인들이 혹은 교회의 방향성이 스스로 속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소위 ‘스노보크라시(snobocracy)’를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는 주요 원인으로 ‘분쟁’을 말하고 있다. 정재영도 비슷한 논지로 구원을 포함한 기독교 교리와 헌금을 성도들이 강요받고 있으며 그 정도는 매우 폭력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소통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일방적이며 특별히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신앙적 고민을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쉽게 정죄 당하는 분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 또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특별히 구원을 한순간의 이벤트로 여기고 이후의 윤리적 삶에 대하여 무관심한 이원론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Ⅳ. 이탈 원인분석


앞의 장에서 언급한 종교인구의 감수와 교회 내부적으로는 수평이동과 신앙 생활의 질적 약화, 특별히 젊은 세대의 교회 이탈현상이 현저함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상황들은 어떤 원인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석이 필요하다. 사회학적 원인과 교회 내부적 원인의 두 가지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이광순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교회 성장에 동력이 되었던 사회학적 요인들이 이제는 그 효용성에 있어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과거 도시와 산업화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외적 성장을 이루었으나 이제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오히려 탈 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에는 더 이상 도시화에 따른 교회 증가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원규는 결국 경제적, 사회복지적인 차원의 발전은 곧 종교의 쇠퇴를 가져 온다는 가설을 현재 한국교회가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고 이로 인한 청년 세대의 늦어지는 결혼 적령시기,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개인주의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는 교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이러한 교인들의 실제적인 고민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의 성장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인구의 감소는 이와 같이 몇 가지 기독교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 인구 감소의 조금 더 직접적인 원인은 기독교 내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일은 ‘목회자와 평신도와의 계층구조’를 한국 교회의 특징으로 꼽으며 이는 결국 ‘교회 중심적 신앙관’에 기인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교회 중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목회자들이 맡게 된 것이다. 김회권도 또한 한국 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도전 중 한 가지를 당회장 목사에게 많은 귄위가 주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잘못된 권위주의에 대항하고 비판할 만한 평신도들의 역량이 부재하다고 판단한다. 목회자에게 권위가 집중되는 현상은 교회 제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만을 강조하는 교회론에 집착해 왔다. 이학준은 한국 교회는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종파주의적 패러다임 속에서 60대 이후 급격히 성장한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성장주의 그리고 물량주의, 배금주의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희송 또한 현재 한국 교회가 맞고 있는 위기는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데이비드 웰스(David F. Wells)는 목회자들이 진리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이 아닌 경영 전문가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일은 ‘구원의 방주’, ‘거룩한 선민’으로서의 교회는 세상을 이질적인 것으로 규명하고 세상-교회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도 혹은 선교는 비그리스도인들을 구원의 방주인 교회로 끌어들이는 ‘개종’에 집중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교회에 전도 되어서 오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 세상과 현실에 대한 이슈들 보다는 내면성과 피안적 세계에 대한 동경만을 심어주게 되었고 공동체나 사회에 대한 심각한 관심 보다는 개인 영혼 구원에만 집중한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셋째로 소통의 부재이다. 신앙의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나 동시에 지식과 이성의 작업 없이 무조건 믿음을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은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성도들이 특별히 수많은 질문과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세대들에게 고민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있다고 정재영은 지적하고 있다. 강영안도 교회 내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반지성주의”적이라며 비판하였다. 또한 교회에 대한 본질과 복음의 본질에 대한 장시간의 고민과 연구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Ⅴ. 현실적 대안 공동체 만들기


한국일은 목회자의 의식 변화를 통한 교회 개혁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홍영기도 또한 한국 초대형 교회의 성장의 저변에는 카리스마적 목회 리더십이 있었음을 언급하면서 한국 교회성장의 미래적 고찰을 언급하면서 목회자 그룹은 단순한 양적 성장의 추구가 아닌 교회의 질을 유지, 발전시키고 사회적 영향력의 증대에 힘을 써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목회자 중심주의를 극복하거나 수정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 목회자에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권력구조를 분산하는 방법이다.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현실을 ‘특수성’으로 받아들이고 건강한 목회적 리더십을 개발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한국일은 이러한 의미에서 ‘성도교회론’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폴 스티븐스(Paul Stevens)의 평신도론을 선교적 교회론과 비추어 분석해내고 있다. 배종석은 조직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조금 더 표준화된 직무기반 접근법의 활용을 통하여 사역에 맞는 적임자를 선출하는 것과 그러한 역량을 구비할 수 있는 훈련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록스버그(Alan J. Roxburgh)도 폴 스티븐스와 같이 에베소서 4장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선교적 리더십의 특징들을 열거하고 있다.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와 앨런허쉬(Alan Hirsch) 또한 선교적 교회론의 입장을 근거로 한 선교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한국일은 교회의 외적 성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점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로 공동체성을 위한 인격적 관계 정립을 위한 적절한 교회론이 필요함을 지적하였고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량생산의 패러다임에서 다품종 소량화로 전환되었듯이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도 새로운 인식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남정우는 선교적 교회론은 교회가 여러 선교활동을 하는 것(Church has missions)이 주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곧 선교(Church is mission)라고 생각하는 것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선교적 교회는 즉 사역보다는 교회 본질에 초첨을 맞춘다는 것이다. 또한 선교적 교회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의 논의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양육을 통하여 선교가 교회의 일부분이 아닌 교회의 본질임을 인식시켜야 한며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는 바로 교회 성도들의 주체성이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이와 연관하여 이상훈은 존재(being)와 행함(doing)의 선교라는 두 축을 통하여 한국 교회의 대안적 길을 언급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교회론과 선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또한 소통하는 방법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에서 아래로의 소통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구조 혹은 동등한 위치에서의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비전제시와 주입식 비전공유는 결국 성도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의 기본 바탕에는 충분한 토론과 자율적인 연구모임 조성이 중요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의견과 비전이 상충될 때 충분한 토론과 설득 작업을 통하여 점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Ⅵ. 현실적 대안공동체 적용과 평가(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를 중심으로)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오랜시간 토의하고 그 정책을 수립해갔다. 이는 앞서 이학준, 마이클 프로스트, 데이비드 보쉬가 지적했던 것 같이 여러 실제적 변수들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독교가 놓치지 말아야 할 그 ‘사실’은 변함없이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앞서 이러한 태도는 앞서 에큐메니칼 진영의 신앙과 직제 운동을 통하여 그리고 로잔진영의 케이프 타운 문서에서도 그리고 북미적 상황을 고려한 선교적 교회론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변화하는 실재들을 인식하되 여전히 변하지 않는 실재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구별해야 함을 역설한바 있다. 양육의 틀에 있어서는 일방통행이 아닌 상호 배움의 장을 열었다는 점 또한 의미를 둘 수 있다. 앞서 가나안 현상의 원인을 지적하면서 제기되었던 ‘숨막힘’ 혹은 ‘폭력성’이라고 이야기 되었던 소통 방식에 대하여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는 교역자들이 함께 토론에 참여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질문을 유도하고 주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게 하는 소통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는 또한 5명의 목회자가 함께 팀을 이루어 장기적인 계획을 위한 정기회의와 현안을 놓고 만나서 함께 토론하는 문화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가 양육과정과 청년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있다. 이는 앞서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목회자 중심주의’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히려 목회자 여러 명이 한 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교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목회자 의존도를 더 높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목회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특수성을 인정하다는 가정 하에서는 오히려 한명의 목회자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하게 된다. 장기적인 방향성과 현안에 대하여 충분히 토론하고 다양한 배경 출신들의 목회자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합의과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록스버그 또한 선교적 리더십을 언급하면서 결론적으로 선교적 리더십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구성원들이 함께 한 팀을 이뤄가야 건강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록스버그의 주장과 같이 선교적 공동체는 경계설정의 언약적 공동체가 존재하며 중심설정의 구도자나 회중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위기 분석 특별히 청년세대에 대한 분석을 하면서 사회학적 요인 중 한가지로 ‘불안정한 청년세대’에 대한 언급을 하였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교제하고 신앙생활 하던 절대적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사역에 있어서도 단순히 사역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역을 통해서 청년들이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높은뜻 광성교회 청년부 사역의 특징은 교회 내부적 행사는 가급적 지양하고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있다. 기존의 전통적 전도 집회를 넘어서 지역 사회 내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는 사역을 진행해 오고 있다. 과거 교회 중심의 선교와 외적 성장에 치중했던 모습을 탈피하고 이 세상이 곧 선교의 무대임을 인식하면서 세상의 회복,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는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취약계층들을 위한 섬김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은 준더마이어의 ‘타자와 함께 하는 교회’를 언급하며 결국 교회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고민하고 질문해야 할 영역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가장 큰 질문은 아직도 개인 신앙과 사회 참여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비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전략 수립도 필요하다. 또한 1000명 이상 대형교회의 수평이동률 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평이동을 보이는 청년교회임에도 교회 내에서 주체적이고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평신도들이 부재하다는 사실과 구조적으로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에 있어서 교역자의 역할이 다른 교회에 비해서 훨씬 더 크다는 점은 자칫 평신도론을 강조하는 선교적 교회론과 모순점이 생기기도 한다. 선교적 교회론을 강조하기 위한 목회자의 역할과 제한적 시간 내에서의 교역자들의 주도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러한 구조가 장기화 된다면 이것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형태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인 교역자 집단의 중심주의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는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Ⅶ. 결론


‘한국 교회는 위기적 상황에 놓여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교회는 단순히 일차원적이고 직선적인 답을 말할 수 없다. 전통적인 교회중심의 교회론과 이원론적인 구원관의 특징을 보편적 특성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유교적 문화에서 기인한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이 결부되어 개혁교회가 가장 중요시 했던 평신도의 참여가 사라지고 특정 목회자에게 권력과 권위를 위임하는 특이한 현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교회는 결과주의 중심의 성장을 이루었고 내적인 성숙 보다는 외적인 성장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는 70-80년대의 산업화와 대량 생산의 산업구조와 맞물려 교회도 그 어떤 산업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대형화 되었다. 목회자 중심주의 그리고 외형적 결과중심주의와 더불어 교회는 불통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수많은 신앙의 문제들과 비구조적 질문들 안에서 교회는 쉽게 하나의 답을 제시하였고 그것이 아닌 다른 질문들은 불경건한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교회 구조 속에서 성도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소그룹이나 설교 강단에서는 하나의 답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폭력이 자행된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정체와 경직된 태도는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 사회 속에서 조금씩 그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기존의 문화에 쉽게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의 세대의 경우 그 이탈현상이 더욱 눈에 띄게 드러났다. 이러한 ‘감소세’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숫자적 감소와 함께 교회 내의 질적 감소를 야기하였다. 성도들은 한 교회에 정착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교회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이동현상의 원인은 교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수평이동현상 뿐만 아니라 신앙에 대한 확신의 정도가 점점 더 약화되어 가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내·외부적인 도전의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가나안 성도’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목회자에게만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견제장치들을 강화해야 하며 동시에 평신도들도 동등한 위치에서 사역할 수 있는 평신도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목회자 의존도가 높은 것이 한국 교회의 특수한 상황을 인식이 된다면 건강한 목회 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도록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소통의 창구를 또한 열어야 한다. 일방적인 소통방식이 아닌 함께 신앙의 주제들을 놓고 토론하여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특별히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불안한 정체성을 신앙 안에서 상담 받고 해결 받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성도들의 교회론이 변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는 양육프로그램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민감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고 타협될 수 없는 불변의 진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한국 교회에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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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oshu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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