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가지 고려사항

시간적 여유를 두고 준비하고 계획했더라면 더 많은 옵션을 고려했겠지만 거의 즉흥에 가까운 결정이었기 때문에 몇가지 기준만을 가지고 바로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가족의 경우 일단 영국을 들려야 했고, 윤서와 수아의 학습을 위해서 최소한 3대박물관(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이탈리아의 바티칸 박물관)을 들리고 건축가가 꿈인 윤서에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가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수아를 위해서는 특별히 다양한 디저트와 현지음식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였다. 



2. 항공권

전에도 언급했듯이 여행 경비를 고려할 때 가장 큰 부분은 항공권이기 때문에 항공권을 저렴하면서 합리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제일 큰 일이 될 것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항공권을 검색해주는 검색엔진들이 많이 있어서 잘 활용하면 좋다.


국내의 경우 인터파크 '여행'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항공권 검색이 가능하며

kayak.com으로 검색하면 전세계의 항공권 중 저렴한 표를 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항공권을 구하는 원칙에 있어서 주요 고려사항은 '가격'이기 때문에 승무원의 친절도나 기내식은 큰 고려사항은 아니다. 

또한 환승을 해야하는 항공의 경우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환승하는 도시를 더 둘러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항공사마다 출발하는 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날짜 뿐만아니라 그 근방의 날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유럽의 경우 도시에 따라 항공료 차이가 조금씩 생길 수있기때문에 다양한 경우의 수를 조합하는 것이 좋다. 

유럽의 도착도시와 유럽의 출발도시가 다르게 설정하여 검색도 해봐야 한다. 

어느경우에는 출발과 도착 도시가 달라도 오히려 왕복보다 비싸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격비교사이트를 통하여 항공료를 확인했다면, 다시 한번 직접 그 항공사 사이트에서 동일조건으로 검색하여 가격을 비교하는 것도 좋다. 

때때로 검색사이트에서 놓치는 할인 이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족은 암스테르담 왕복으로 중국남방항공이 70만원대(8월 성수기이고 표예매시점이 2주전임에도 불구하고)가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베이징에서 대기시간이 5시간 정도 되었는데 오히려 12시간 대기시간의 표로 다시 검색을 해서 기다리는 동안 베이징 시내가 나가서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일대를 

관광하고 다시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다. 돌아올때도 비슷한 대기시간이어서 만리장성을 다녀오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만류?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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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가족과 함께 떠나보자 유럽여행!  (0)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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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유럽을 여행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영국으로 공부하는 길에 들려서 몇군데를 방문하려고 했었지만 이제 다시 돌아와야하는 곳은 영국이 아닌 한국이라는 상황에 잠시 망설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언제 아이들과 이렇게 귀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을까하고 하룻밤을 아내과 꼬박새면서 큰 틀거리를 짜고 비행기를 예매했다!!


그동안 20여년간의 아빠와 남편의 유럽 방랑의 엑기스라고나 할까? 가족들과 여행하는 것이 기대도 되지만 이제껏 이끌었던 그 어떤 팀보다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팀이다!!


몇가지 고려사항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그 그룹만이 가진 특수한 상황들이 있을 것 같다.

1. 먼저 우리가족은 영국에서 7년여간 살았기 때문에 지긋지긋한? 영국보다는 다른 나라에 더 중점을 두었고 그렇지만 또 살았던 고향과 친구들을 방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2. '영국이 아닌 다른 유럽에서 우리가족이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은 없을까?'라는 실제적인 고민도 있었기 때문에 유럽의 각 지역마다 오랫동안 거주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 루트의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3. 동시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만큼 3학년, 5학년인 수아, 윤서에게도 기억되고 앞으로 인생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여행기간과 시기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제약이 없다면 여행을 길게가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일 것이다.

유럽여행의 경우 여행경비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항공료와 기차 그리고 숙박비이다. 예를들어 10일정도 여행을 일인 250-300만원의 예산으로 잡는다면 그 중 70%이상은 항공료과 숙박으로 쓰게 될 것이다.

결론은... 이왕 나가는 김에 길게~ 있어보자!!는 것이다.

가만... 내가 가려고 하는 시기는 8월말이니까 일단 대학생들 배낭여행 시기와 안겹치니까 조금은 여유도 있고 날씨도 여전히 10월까지는 좋으니 여행의 최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아이들 학교가 걸렸다. 추석연휴가 있어서 며칠은

빠질 수 있고 재량학습으로 10일 정도는 유예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이 시간은 어떻하지?라는 고민이 생겼다. 선생님과 통화도 해보고.. 결론은 3달까지 무단결석을 안하면 유급은 면할수 있다고 하더라

좋다 한달 무단결석이다~!!! 아이들아 대신에 우리는 인생공부를 하러가는 것이니^^


나? 나도 일단 다녀보고 다니면서 고민하고 정리되는 마음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하고 1달은 온전히 가족과 보내는 시간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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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항공권 구입하기  (0) 2017.06.01
Posted by joshu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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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교회 마을 연구소가 2016년 봄에 처음으로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일 교수, 김도일 교수, 조은하 교수가 공동소장을 맡고 실제 목회 현장에서 마을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이러한 선교적 교회가 가정에서도 실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아직 가.교.마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이전인 2014년 동독 출신의 루터교회 소속 목회자 분들이 자신들의 영성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만들었고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였던 김나함 박사님은 한국일 교수님과 같이 하이델베르그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연결되어 10여일 동안 한국의 다양한 교회들을 소개하고 함께 토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독일 목회자들은 서울 덕수교회(김만준 목사), 영락교회(이철신 목사),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영은교회(고일호 목사), 성암교회(조주희 목사), 경기도 수원성교회(안광수 목사) 부천 새롬교회(이원돈 목사), 양평 신앙공동체 모새골(임영수 목사), 충남 아산 송악교회(이종명 목사) 등을 방문했다.

http://kccnews.net/news/?mid=news_kr&document_srl=3138&listStyle=viewer&page=4



그리고 2017년 4월, 종교개혁 500주년이기도 한 올 해 이번에는 독일 교회의 목회자들의 초청으로 한국 교회 목회자들과 기관 사역자들이 함께 독일교회를 방문하고 배우며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정의 처음은 통합측 파송 선교사로

오랫동안 유럽 선교를 위해 사역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모범으로 보이고 계신 체코 프라하의 이종실 선교사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분들이시다. 사진 왼쪽으로부터 한국일 교수(장신대), 배경임 국장(크리스챤 아카데미), 김영철 목사(타원형 교회), 안광수 목사(수원성 교회),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김나함 교수(Tabor, Marburg), 김도일 교수(장신대), 이명식 목사(조암신흥교회), 오세향 선생님(부천 새롬교회)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황인성 목사(바른교회아카데미)이다. 이번 그룹은 매우 특별한 조합의 모임이었다. 교수님들이 교회와 선교, 교육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시고 중대형 교회 목회자, 농촌 교회 목회자, 마을 사업을 중점으로 하는 목회자, 교회 컨설팅과 목회자 교육을 담당하는 사역자 등 나이도 다르고 사역의 현장도 다르지만 함께 유럽 교회들을 방문하고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국 교회의 개혁과제를 고민하기 위해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단순히 500-600년전의 종교개혁의 현장을 순례하는 과거로의 여행이 아닌 체코와 독일에서 실제로 이러한 종교개혁의 유산이 어떻게 현재의 교회에 이어져 내려가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종교개혁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를 가까운 곳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분명 보고 듣고 느끼고 도전받은 부분들이 가공되고 재해석되어저서 한국 교회의 또 다른 개혁에 밑거름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단순히 여행하고 교회를 방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저녁마다 식사 때마다 차량으로 이동할 때마다 서로간의 살아온 이야기와 생각들을 나누며 교제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은 여행의 또다른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또 다른 동지이다. 사실 차 몇대를 렌트할 생각에 국제면허증을 만들고 지도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종실 선교사님께서 이렇게나 좋은 차와 기사분을 소개시켜 주셔서 차안에서 교제하며 이야기하고 예배하는 이동 모임 장소가 되었다. 모두가 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좋은 벤츠는 처음 타본다며 즐거워했다. 운전으로 수고해준 슬로바키아 출신의 제이콥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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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슈필버그(Spielberg) 루터교회


리벤젤에서 차로 한시간여를 달리면 슈필버그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이곳의 루터교회의 초청으로 성도들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교회는 OM선교사로도 사역했고 현재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사진의 뒤쪽 중앙)가 청소년 사역을 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는 작년에 한국에 와서 장신대에서 연구학기를 가지며 다양한 교류를 가졌던 분이다. 

독일의 시골마을들은 봄을 맞아 작은 도로들을 임시로 폐쇄하고 작업하는 곳이 많았다. 덕분에 약속시간에 보기좋게 늦고야 말았다. 1시간여를 기다려준 교히 장로님들과 사역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매우 솔직하게 자신들의 사역과 교회 구조, 재정 현황들을 나누어주었고 구체적으로 독일의 현지교회는 어떤 사역과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 실제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노인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펍'을 멋스럽게 만들어놓고 지역 청소년들과의 접촉점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여러 성도님들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저녁식탁 교제를 나누었다. 가족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살면서 함께 가족의 삶의 공유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날 교제의 중심 키워드는 'The Less, The More'였다.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덜 벌기로 결심했다는 이들의 고백이 도전이 된다. 


식사를 마친 평일 늦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전담임 목사님의 짧은 메세지와 찬양 그리고 기도의 경건회를 함께 가졌다. 서로를 위해 축복하고 또 한국과 독일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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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리벤젤 선교회(Liebenzeller Mission)

http://www.liebenzell.org/toplinks/english/






리벤젤 선교회는 과거 영국 출신의 허드슨 테일가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을 시작하면서 함께 사역했던 독일 선교사 Heinrich Coerper가 다시 독일에 돌아오면서 1899년 11월 13일 CIM의 독일지부 성격으로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단체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한 독지가의 기부로 지금의 바드 리벤젤(Bad Liebenzell,  속칭 사랑의 마을)에 선교회가 옮겨오게 되었고 현재는 선교단체가 독립적으로 신학교(Internationale Hochschule Liebenzelle)를 세워 학부, 석사과정에 100여명의 독일 청년들이 훈련받고 있으며 240여명의 선교사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 선교회의 일년예산은 2015년 기준 1290만 유로(약 167억원)이다. 

이 신학교에는 특별히 김나함 박사님의 동생인 김미함 박사님이 교수로 사역하고 계시고 현재는 마이크로네시아에 가족이 선교사로 사역중에 있기도 하다.


리벤젤 선교회 총재 V. Gaekle와 선교부 총무 M. Auch와 함께 심도있고 솔직한 신학적 토론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그러하듯이 리벤젤 선교회도 지난 시간 동안 교회개척을 최우선의 목표로 달려왔으나 현재는 앞으로의 선교회의 비전을 고민하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진지한 신학적 성찰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다. 실제적인 복음 전도의 강점을 가짐과 동시에 철저하게 신학적으로 준비된 선교회의 모습을 보며 한국교회와 선교단체의 모습을 겹쳐 생각하게 되었다. 



이곳의 훈련생들은 모두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함께 저녁을 먹기 전 학생들의 인도로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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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셀비츠(Selbitz) 개신교 수도원(Christusbruderschaft)

https://christusbruderschaft.de



Anna-Maria 수녀원장님 



몇년전 독일 목회자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많이 놀랐던 부분 중의 하나는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감당하고 있는 다양한 사역의 모습이 있었다. 

단순히 헌신적으로 일을 잘 한다의 놀람이 아니라 어떻게 성도들이 교회에서 그렇게 다양한 사역에 열성적으로 참여 할 수 있냐는 긍부정의 의미를 포함한 질문이었다. 

한국을 다녀온 독일 목회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는 것이었다.


이곳 셀비츠의 작은 시골 마을에도 개신교 수녀들을 위한 그리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영성수도원이 있었다. 1949년에 세워졌고 현재는 약 120여명의 수녀님들과 가족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 목회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수녀님들과 함께 묵상의 시간을 보내고 또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창조주의 섭리와 위대하심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수도원을 오랫동안 돕고 있는 가죽 신발가게에 들려 헌금하는 마음으로!

http://www.jomos.de/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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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에르푸르트(Erfurt) 루터교회의 주일예배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에르푸르트(Erfurt)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때마침 그날은 세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통일 전 서독과는 달리 동독은 공산주의 치하에 있을 때 교회의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따라서 유아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꽤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서 세례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날은 쌍둥이 청소년들과 유아세례가 치뤄졌다. 세례식이 끝나고 목사님이 앞 제단에 있는 초에서 다른 초에 불을 붙이고 그 초를 아이에게 주면 아이들의 성경학교가 따로 시작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만났던 에르푸르트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마틴 뫼슬라인(Martin Moeslein) 목사님의 소개로 에르푸르트 교회들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에르푸르트 대성당에서 루터 사제 서품을 받다

수도원을 거닐며 고민했을 마틴 루터

딱히 한 학생에게 방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모든 학생이 돌아가면서 이런 공부방에서 공부와 수련을 했다고 한다.


어린시절을 아이제나흐에서 보낸 루터는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그러던 1505년의 어느날 슈토테른하임을 지나다가 벼락을 만나고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수도사로 서원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 해 7월 그는 엄격한 아우구스티누스파 엄수파 수도원(Augustiner-Eremiten-Kloster)에 들어갔다. 금식, 자기성찰, 고해 등을 충실히 수행하며 존경받는 수도사가 되었지만 루터는 내면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싸워가며 다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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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아이제나흐 사회봉사기관과 교회


독일의 기독교는 사실상의 국가 종교이다. 

물론 크리스텐돔의 시대는 지나갔고 예전처럼 기독교가 사회, 정치, 경제 분야 전면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세금 중 일부를 종교세로 부담하게 된다. 여기에서 다양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종교세를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 그들은 일종의 종교 서비스(유아세례, 결혼주례, 장례식)등을 제공받지 못한다. 독일인들에게는 아직까지 교회의 문화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세금으로 목회자의 사례와 교회유지비의 상당부분이 운영되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종교세를 관할하는 루터교회의 총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로마 카톨릭의 시스템과 비슷하게 개교회 보다는 노회나 총회 주도의 프로젝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 시스템은 일관성의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으나 지역교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각 지역마다의 특성을 살려 사회봉사(디아코니아)를 하는 부분이 약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독일교회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아이제나흐 지역 내에 있는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봉사기관 몇 곳을 방문했다. 주말임에도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하여 기꺼이 시간을 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곳은 장애우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다. 중증 장애우들은 시설에서 직접 생활하며 지도하고 있고, 스스로 삶을 살 수 있는 장애우의 경우에는 지역에 흩어져서 직접 살아보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위의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장애우들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장애우들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이 자립하고 스스로 생활해 갈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웃주민들도 이 장애인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주변 곳곳에는 장애우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기업체(양초가게, 베이커리 등)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제나흐 시내에 성 게오르크 교회가 있다.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을 만나 교회의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루터가 보르슴에 오고가는 길에 설교를 했던 곳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이곳에서 사진 속 세레반에서 세례를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아이제나흐 시내에 마틴 루터를 주제로 하여 로마 카톨릭이 바라보는 관점을 흥미있게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다. 단순한 아이디어 이지만 일회용 종이 안경에 한쪽에는 빨간색 다른 한쪽에는 파란색

필름을 부착하여 같은 사건과 인물에 대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의 상반된 입장 혹은 변화되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질문에 대한 그 선택은 방문자들에게 남겨두고 있다. 



아이제나흐 지역 교회 교구감독(Superintendenten)인 Ralf-Peter Fuchs 목사님과의 저녁식사와 교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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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아이제나흐(Eisenach) 개신교 수녀원 그리고 바르트부르크



독일 전역에는 루터교회 산하 개신교 수녀원이 세워져있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그 숫자나 시설이 많이 줄어들어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우리가 머물렀던 아이제나흐의 개신교 수도원이 이 근방 지역의 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가브리엘레 필러(Gabriele Phiele) 목사님은 얼마전까지 이 수도원의 원장으로 계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셨다고 한다. 아침마다 90세가 되신 수녀님의 섬김을 받으며 우리는 풍성한 식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제나흐 시내에서 차로 10여분만 달리면 산 꼭대기에 세워진 바르트부크르 성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의 개혁의지를 굽히지 않던 마틴 루터는 결국 보름스에서 황제 카를 5세로부터 이단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여러분은 마르틴 루터에게 집이나 거처를 주지 말고, 먹고 마실 것을 주지 말며, 은밀하게나 혹은 공개적으로나 말이나 행동으로 그를 지지하지 말라, 그에게 그 어떤 도움이나 지지나 원조나 보호를 보여주지 말라. 오히려 여러분은 그가 당도하여 발을 들여놓는 곳에서 당장 그를 체포하여 잘 감시하여 우리에게 보내라. 여러분은 루터의 모든 추종자, 보호자, 후원자 들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 즉 그들을 쓰러뜨리고 감금시키고, 주저하지 말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여러분의 유익을 위해서 소유하고 사용하라. 그렇게 한다면 신앙의 표징이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들이 불의한 길에서 벗어나게 되고 교황의 면죄를 받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박경수,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3), 82-3.


그러나 그를 도와주던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아이제나흐 근처 바르트부루크 성에 은신시킨다. 그리고 이곳에서 독일어 성서를 번역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에 놓이게 되었고 그 인고의 시간을 거쳐 독일인들이 읽을 수 있는 독일어 성경 번역의 일부를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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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예나(Jena)지역 루터교회 방문


몇년 전 독일 루터교회에서 영성훈련을 책임 맡고 있는 마티아스 박사님(Matthias Rost)과 그의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루터교회 목사님들 몇분이 한국에 방문했었다. 

소위 한국의 '메가처치'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국교회의 상황과 다양한 노력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에까지 매일 강행군을 하면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한국방문의 마지막날 곤지암의 한 숲속 별장에서 독일의 통일과 한국의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던 그날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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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5일의 페북글 갈무리...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600095926780569&l=0155f48eb6


지난 열흘간 독일 교회 목회자들이 한국을 방문 한국교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목회자중 대부분은 예전 동독 출신이셨다.
어제 저녁 마지막 리뷰를 하면 들었던 그들의 느낌과 생각들
-전 평화의 하나님이 어떻게 동독에서도 일하시는지 알기 위해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전기. 수도등 생활시설들은 빠르게 개선될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최소한 1세대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쉽사리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성도님들의 열정과 헌신에 도전을 받습니다. 마치 성도님들이 두번째 직장을 가진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쉼과 묵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많은 한국교회들이 통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기도가 멀리있어보이고 매우 커 보이기만 합니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위해 기도가 필요합니다
-독일이 통일될때 단 한방의 총성이라도 울렸다면 통일은 무산되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수많은 독일의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무력충돌없이 평화의 하나님이 온전히 역사하시도록 마음 졸이며 기도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통일을 경험하고 포스트 통일시대에서 목회하고 계신 독일 목회자들의 진심어린 조언과 피드백들은 막연히 통일을 생각하고 기도하던 나에게 구체적인 그림과 마음을 품게하였다.
주님 한국 부흥의 출발점에 다시 한민족이 함께 서서 예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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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년여의 시간이 흘러 그 당시 함께 방문 했었던 안트예 레쉭(Antje Leschik) 목사님의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다. 




예정된 시간보다도 늦게 도착 했음에도 이곳의 교회 성도님들은 각자의 집에서 손수 준비한 예나 지역 특산 소세지와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이날은 주일이 아닌 평일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예전 스웨덴의 루터교회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최근에 시작한 루터교회들은 그림과 시각적 장치에 탁월한 은사를 보여주고 있다. 루터 아니 그 이후의 종교개혁가들은 icon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경계하며 성상숭배로 여기며 배척했지만 단순히 설교를 듣는 수동적인 예전이 아닌 눈으로 보고 함게 참여하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모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교회에서 준비한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찬양하고 식탁교제를 나눴다. 


안트예 목사님은 몇년전 한국 방문을 통해 느꼈던 몇가지를 실제 독일 목회에 적용하고 있다고 이야기 나눴다. 마을을 섬기는 사역의 모습과 교제의 부분이었다고 한다. 




Posted by joshua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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